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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지 말아야할 남대문(숭례문) 복원 

 
  대한민국 국보 제1호 남대문. 그 남대문이 화마(火魔)로 전소된지도 이제 4일째가 되었습니다. 남대문의 본래 이름은 물론 숭례문이지만 그 동안 모든 자료에는 남대문으로 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명으로 부르게 된 것은 아마도 이번 화재 당시 불길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소방관이 고가사다리 차에 올라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적힌 현판을 떼에 내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언론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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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야경(2007. 10 11 촬영)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대문은 조선시대에 축조한 4대문 중의 하나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뒤 주변에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설치하였습니다. 동쪽에는 흥인지문을, 서쪽에는 돈의문을, 남쪽에는 숭례문을, 그리고 북쪽에는 숙정문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서대문인 돈의문은 일제가 1915년 도로를 확장한다면서 헐어버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4대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가치가 높아 국보 제1호로 지정된  남대문이 이번 화재로 폭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4대문 중에서도 유일하게 현판의 글씨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적었습니다. 이는 관악산의 불의 기운을 누른다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였다고 합니다.

  글씨를 쓴 사람에 대하여도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이라는 설과 다른 사람이라는 설로 분분합니다. 누가 글씨를 썼는지를 떠나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마저도 남대문을 지날 땐 그 글씨에 도취되어 오랜 시간을 바라보았다는 걸작입니다. 이토록 귀중한 현판을 화재로 인하여 소방관이 떼어 내려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릴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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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현판(2007. 10. 11 촬영)




  글쓴이는 고3 때인 1967년 가을 지방도시에서 상경하여 안국동 소재 풍문여고에서 은행원 입행시험을 보았습니다. 밤새도록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올라와 버스를 갈아타고 낯선 서울거리를 지날 때 처음 인상 깊게 본 건물이 바로 남대문이었습니다.

  그 후 은행원이 되어 명동입구근방에 위치한 직장에 근무하며 하루에 두 번씩 남대문 곁을 지나 다녔습니다. 남대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의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후 경제성장과 발전에 따라 주변에 고층 빌딩이 많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고고한 품위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주야로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에 비록 외관은 더러워지기도 하였지만 그 본성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관계당국에서 단청을 새로 칠하기 위해 가림막을 쳤을 때도 작업이 끝나면 좀더 화려한 남대문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가림막 안에는 처참한 잔해만이 있을 뿐입니다. 화려하던 단청도, 명필인 현판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돌이켜보면 남대문이 있음으로 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시장인 남대문시장이 형성되었으며, 남대문에서 한국은행을 거쳐 종각으로 연결되는 "남대문로"가 명명된 것입니다. 우리는 남대문이 그 자리에 영원토록 서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서울시청 앞 태평로에서, 그리고 남산 쪽에 서면 항상 바라보이는 남대문은 그야말로 서울의 랜드마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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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바라본 야경. 사진 중앙에 남대문이 작게 보인다(2007. 12. 7 촬영)




  그런데 이 남대문이 불이 난 후 불과 5시간만에 앙상한 몰골만 남은 쓰레기 더미로 변했습니다. 수많은 최신 소방장비와 소방관들이 운집해 있었지만 화마(火魔)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남대문이 상시 그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진정한 가치를 몰랐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가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남대문의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던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이제는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행업계에서는 남대문 방문계획을 변경하느라고 분주하며, 우리나라관광을 홍보·선전하는 한국관광공사는 각종 영상물 등 홍보물에서 남대문을 지운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대처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 국민의 슬기를 모아 잿더미로 변한 남대문을 복원할 것임을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남대문에 관한 사항을 삭제해야합니까? 그 대신 이토록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있었지만 불의의 화재사고로 소실되었음을 밝히고 앞으로 복원할 때까지 불편하지만 참아 달라고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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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의 남대문(2007. 10. 11 촬영)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는 초등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삐뚤삐뚤한 글씨의 편지지가 사람들이 가져다 둔 국화 위에 놓여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남대문아, 안녕? 나 소라야. 불 때문에 뜨거웠겠구나. 남대문아, 난 너를 꼭 기억할거야. 사랑해 남대문!"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누가 이토록 크나큰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화재와 관련이 있는 3개 정부기관(문화재청, 소방방재청, 서울 중구청)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는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물론 책임소재를 밝히려면 공방을 벌여야겠지만 무분별한 언론 플레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이제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차기정부의 대통령재임기간(5년) 내에 남대문을 복원하여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국내외 전문가와 전 국민의 뜻을 모아 앞으로 여러 천년 동안 견딜 수 있는 문화재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데 심혈을 기우려야 합니다. 남대문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지만 졸속으로 채우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가우디(Gaudi)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재 성가족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설되기 시작하였지만 앞으로 완공까지는 100∼20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화재가 난 금각사를 복원하는데 시행착오를 거친 후 50여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남대문 복원에는 제발 빨리빨리 문화를 극복하기를 바랍니다.(2008. 2. 1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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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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