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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한가위 명절인 추석이다. 우리가족은 형님댁으로 가서 추석 차례를 지낸다. 그런데 명절을 맞아 형님댁으로 갈 때마다 내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야 하거늘 내 마음이 이토록 무거운 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두 아들 때문이다.


아내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던 녀석들은 몇 년 전부터 차례상에 절하기를 거부했다. 이유는 귀신에게 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과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제례의 조상신은 다르다고 해도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된 아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아내마저도 아이들과 같은 입장이다. 그러니 명절과 제사 때만 되면 내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내가 결혼 할 당시 아내의 첫째 조건은 종교가 없어야 했다. 내가 특정 종교가 없으므로  나중에 갈등을 예방하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아내도 종교가 없는 것을 원한 탓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을 때 교회에 다닌다고 하기에 나는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은 건성으로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결혼 후 남편이 싫다면 교회를 다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큰아들을 낳은 후 산후통증으로 어깨가 매우 아팠는데, 성령을 받아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면서 그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아내를 따라 함께 교회에 나갔다.


아내는 나에게도 교회 다니기를 원했지만 나는 성경의 말씀이 한 구절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거절하였다. 아내가 무신론자인 남편을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하였지만 나의 완강한 고집에 아내도 그만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가 우리가족은 미국과 스페인에서 각각 2년씩 생활하는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서의 단조로운 생활 중 주말을 맞이하여 한인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내를 태우고 교회에 갔다. 강당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지만 모두가 궤변 같아 귀에는 한 마디로 들어오지가 않았다. 나는 기독교의 교리 중에서도 유일신을 신봉해야 하는 게 제일 싫었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는 결국 다른 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종교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국교(國敎)는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 누구나 어떤 종교를 가지던 자유이다. 내가 아내에게 교회에 나가지 말도록 강요하지 못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사상에 따라 다른 신을 믿는 종교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러니 다른 종교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유일신 사상을 우리의 전통미풍양속에 까지 확대 적용하는데 있다.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신을 어찌 조상의 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 종교의 신은 그대로 신봉하면서 조상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조상의 기일(忌日)에 제사를 모시고,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돌아가신 선조들에 대한 경배의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객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혈육이 정을 나누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은 제물을 차려 놓고 찬송가를 부른다고 하지만 고인이 무신론자인 경우 과연 이런 의식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아둔한 필자는 잘 모르겠다.


오래 전 어느 중앙부처의 국장이 자신의 조카가 예수 믿는다고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아 귀싸대기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 아들들이 할아버지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앞길이 막막하다. 내가 죽어 저 세상으로 떠난 뒤 자식들로부터 밥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죽은 후의 영혼이 무척 불쌍해 보인다. 사실 죽은 후 영혼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가! 그저 살아 있을 때 아귀다툼을 하지말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없이 한 세상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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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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