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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배동 남산 서쪽계곡에 있는 경주포석정지(慶州鮑石亭址)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입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습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입니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합니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사적 제1호입니다.(자료 : 문화재청).   


 

그런데 이 포석정은 두 얼굴을 가진 곳입니다. 화랑들의 풍류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아픈 상처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927년 신라 경애왕(景哀王)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강요받았거든요. 이 사건으로 인해 한때 신라의 번영을 상징했던 포석정이 동시에 신라의 종말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진 매우 중요한 사적이지만 실물을 보면 매우 초라하게 보입니다. 경주의 문화재 중 불국사나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등은 실물을 보면 사진에서 보든 것보다 오히려 웅장해 보이지만, 포석정과 첨성대 등은 솔직히 좀 실망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는 글쓴이가 역사에 대한 안목이 부족해서이겠지요.



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그냥 평범한 공원 같은데, 큰 나무 사이로 전복같이 생긴 수로가 있습니다. 돌로 경계표시를 하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포석정은 화랑의 풍류장소라는데, 현지 안내문은 역대 왕의 연회장소로 설명하고 있어 의견통일이 아쉽습니다.(201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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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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