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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에 모자를 쓰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졸업한지가 벌써 43년이 지났다. 어찌 세월이 이다지도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뒤돌아보면 지나온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기 그지없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여러 단계의 학교동창들이 많지만 고등학교동창만큼 응집력이 강하고 자주 만나는 동창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청년기에 같은 학교, 같은 교정에서 3년 동안 함께 생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도 지방도시소재 고교를 나왔지만 졸업 후 바로 상경하여 서울에서 삶의 터를 마련하였으므로 타향인 서울이 제2의 고향이 되었고, 군대생활 3년과 대구지방에서 보낸 직장생활1년을 제외하면 39년 간을 서울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고교동창회도 재경동창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런데 모두가 한창 일할 시기에는 살기에 바쁜 나머지 참여인원이 적었으나 점점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참가하는 인원이 잠깐동안 증가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다시금 인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글쓴이는 지난 약 20년 간 꾸준히 동창회에 잘 참여하여 왔다. 그 동안 거의 연락이 없던 친구가 한 두 번 참가하고는 자녀청첩장을 돌린 후 혼사가 끝난 후에는 또 다시 참가하지 않는 얌체족도 간혹 보게 된다. 이런 행위는 동창회를 이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되어 뜻 있는 동기들의 조용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기회장이 회원들의 참석이 저조한 것을 보고 한마디안내를 하였다.
"우리 동기 중에 연회비(10만원)를 납부하지 못해 참석하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회비를 면제시켜 줄 테니 데리고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그런데 한 친구가 되받았다.
"솔직히 우리 동기들 중에 연회비 10만원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친구가 어디에 있냐? 그런 친구 있으면 데리고 와, 내가 대신 내 줄께!"

이런 호기는 사실 매우 부적절한 돌출행동이다. 동기들 중에는 많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 비록 많은 재력은 없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 아직까지 용케 직장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세무사, 공인회계사, 자영업자, 실업자(은퇴자) 등 다양한 부류의 친구가 있다. 이들의 생활수준이 어떤지 사실은 잘 모른다. 현재 쉬고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삶에 지장이 없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어려운 친구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직장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어 노후가 걱정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회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친구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발언이다.

연회비 10만원은 법인카드사용이 가능한 사업가에게는 저녁 한끼 값이지만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다. 그리고 동창회가 고등학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형성한 인간관계로 인해 각종 모임의 연회비만도 연간 수 십 만원이 들어간다. 또 시도 때도 없이 전해지는 경조사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을 경우 이 정도는 기꺼이 낼 수 있지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큰 소리 치는 친구는 지금도 반듯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연회비 10만원은 그야말로 껌 값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회비도 납부하지 못하면서 동창회에 참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공론화하기보다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최선이다. 어찌되었든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이 회비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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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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