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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미정에서 바라본 북녘땅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번지 소재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입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다른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지었답니다. 정자의 양옆에는 수령 500년이 지난 노거수인 보호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연미정이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합니다. 

 황형 장군 고택지 비(碑)

 

연미정은 조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청 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장소이기도 한데, 정자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입니다. 연미정은 강화10경의 하나로서 뛰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한강 맞은 편은 북녘 땅인 황해도 개풍군 대성면입니다. 강의 중앙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은 뱀섬 또는 학섬이라고 부른답니다. 뱀은 학의 알을, 학은 뱀의 새끼를 잡아먹기 때문이랍니다.


 


 

 무인도



이곳은 장무공 황형 장군(1459-1520)이 왜군과 여진족을 정벌한 후 낙향하여 거처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황형 장군의 후손으로 강화도 친환경농업업농민회 회장이며 음식점 "연미정 가든"(032-937-6211)을 운영하는 황인엽 씨는 이곳 연미정으로 나와 문화해설사를 자임했는데요. 황형 장군은 임진왜란이전에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으며, 경내의 대나무는 대마도를 정벌하고 회군할 때 직접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마도를 어찌 우리의 영토로 지키지 못했는지 아쉽습니다.

 해설하는 황인엽 씨(우측의 붉은 상의 남성) 


 

황인엽 씨는 연미정이 있는 곳의 지리적 여건을 유창하게 설명합니다. 서해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지역 특산물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수송수단은 배편이었답니다. 그러나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만조 때가 아니면 한강에 배를 띄울 수 없어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한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자연히 객주집이 성업을 하였답니다. 지금은 육로수송이 발달하여 이곳의 전성기는 쇠퇴하고 말았다고 하는군요. 세월 따라 고장의 흥망성쇠가 부심을 거듭하듯 우리네 인생도 오르내림이 있을 것입니다.(2012. 2. 28)   

경내 대나무


 


 

연미정 아래 성곽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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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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