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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망봉능선에서 비로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

 비로봉 정상에서 동쪽의 산하를 바라보는 부자

 비로봉에 오른 수녀들    

  

산악형 국립공원에 붙은 이름도 매우 상징적입니다. 설악산은 산중미인(山中美人)이라고 하며, 지리산은 어머니 산으로, 월출산은 기암봉의 전시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답사하려는 소백산은 바람의 산입니다. 한 겨울 소백산 비로봉 정상(1,440m)에 올라 살인적인 칼바람을 맞아본 경험이 없으면 소백산을 왜 바람의 산이라고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봄에는 철쭉으로 유명하고, 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길은 대초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가슴이 확 트이는 곳입니다.

글쓴이는 이미 3차례나 소백산 비로봉에 올랐지만 두 번은 살을 에는 듯한 한 겨울에 올라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한번은 철쭉 철에 올랐으나 때가 맞지 아니하여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약 1개월 전부터 소백산의 만개한 철쭉을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소백산 철쭉제도 영주는 5월 19일부터 27일까지, 단양에서는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개최했습니다. 그렇지만 보도에 의하면 당초 계획보다 개화가 다소 늦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충일을 맞아 절정기의 철쭉을 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등산버스에 올랐습니다.

소백산을 오르는 길은 여럿 있지만 철쭉이 가장 좋은 구간은 연화봉 일원과 비로봉∼국망봉 구간이라고 하기에 비로봉과 국망봉을 경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산행은 어의곡리에서 출발해 비로봉과 국망봉 그리고 상월봉을 거쳐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어의곡리에서 비로봉까지는 거리가 5.1km로 약 1천 미터 정도 고도를 높여야 하는 고달프고도 지루한 길입니다. 등산로가 그리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게 그나마 다행이지요. 능선에 오를 때까지 숲 속 길이어서 그늘이 지어 좋은 점도 있지만 조망을 전혀 할 수도 없고 또 바람이 없어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는 게 흠입니다. 

 어의곡리 등산로 입구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10분만에 국망봉 삼거리에 도착하였고 그로부터 20분 후에 비로봉 정상(1439.5m)에 올랐습니다. 비로봉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많지만 오늘은 현충일이어서 그런지 예상보다는 등산객이 적어 비로봉표석을 넣어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비로봉에 서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집니다. 희뿌연 구름으로 인해 시계가 맑지는 않지만 남쪽으로는 연화봉능선 너머로 도솔봉 능선이 희미하고, 동쪽으로는 영주와 봉화가 아련하며, 북쪽으로는 백두대간 길인 국망봉과 상월봉 능선이 내달립니다. 서쪽으로는 이름 모를 산들이 뒤로 이어져 있습니다.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은 흡사 대관령 목초지에 온 느낌입니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초원

 비로봉 정상의 인파

 비로봉 표석

 남쪽 연화봉과 도솔봉 능선

 연화봉 능선

 북쪽 국망봉능선 

      

비로봉에 선 것은 오늘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3년 1월 한창 등산에 취미를 붙인 초보자시절입니다. 그 날 서울의 아침최저기온은 영하 15.5도였습니다. 배낭을 챙겨 길을 나서는 나에게 아내는 이 추위에 무슨 등산이냐고 말렸지만 나는 앞으로 평생 산에 다녀야 하는데 추운 날 더운 날 가리면 되느냐고 호기를 부리며 등산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행들머리는 비로봉 남쪽의 삼가리였지요. 비로사를 거쳐 비로봉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한겨울의 추위를 전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소백산 줄기가 가로막은 덕분에 남쪽의 양지쪽 등산로는 매우 포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로봉 정상에 발을 디딘 순간 그곳은 이미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세찬 바람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고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 숨을 쉬기로 힘들었습니다. 방한복에 귀를 덮는 모자를 착용했기에 몸은 추위를 몰랐지만 문제는 시린 손과 얼어붙는 듯한 얼굴부위의 추위였습니다. 소백산이 바람의 산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눈만 나오는 벙거지모자를 준비하지 않은 게 실수였던 것입니다. 지금 보니 비로봉 주목관리소(겨울에는 대피소로 활용)가 바로 몇 백 미터 앞에 보이는데 그 당시는 칼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이 심한 지옥길 같았습니다. 대피소에 몸을 피해 겨우 살아났는데 당시의 체감온도가 영하 39도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두 번째 비로봉을 찾은 것은 그 후 따뜻한 봄날이어서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 째가 문제였습니다. 2006년 2월 백두대간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북쪽 고치령에서 비로봉까지 14km 거리를 걸었습니다. 문제는 무릎까지 쌓인 눈으로 인해 빨리 걸을 수가 없었고 눈을 헤치며 걷는 길이 매우 피곤했다는 것입니다. 국망봉을 지나자 이미 해는 서산으로 지고 말았는데 밤이 되자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등산로에 설치된 데크를 잡지 않으면 몸이 바람에 날려갈 지경이라 겨우 몸을 지탱하면서 비로봉을 거쳐 대피소로 이동했습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소백산 정상에는 함께 온 일행 2명뿐 다른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어 적막했고, 튼튼한 비로봉 표석만이 칼바람을 견디며 추위와 어둠 속에서 소백산을 외로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비로봉에 오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옛날 술사 남사고(南師古)는 길을 가다가 소백산을 보고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아마도 지금과 같은 오뉴월이었을 것입니다. 한겨울 칼바람을 경험했다면 그는 반대로 "이 산은 사람을 죽이는 산"이라고 했을 테지요.    

대피소 방향에서 한 무리의 수녀들이 올라오더니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들이 짚고 있는 지팡이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비로봉까지 오를 정도면 그 체력은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코스로 오르든 비로봉까지는 적어도 2∼3시간은 올라야 하거든요.

 수녀들의 기념촬영

 

이제 국망봉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삼거리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철쭉 군락지이지만 이미 철쭉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철쭉도 꽃이 시들어 볼품이 없습니다. 결국 금년에도 소백산 철쭉은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군요. 초암사 삼거리를 지나 국망봉으로 갑니다. 중간의 암봉 옆에는 사람들이 비로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 국망봉(1,421m)은 신라망국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국립공원에서 적어둔 국망봉의 유래를 살펴볼까요?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다녔다.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연유로 국망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국망봉 가는 길

 동쪽의 풍경(우측 암봉은 사람 얼굴 같음)  

 시든 철쭉


 


 


 

 국망봉 가는 길

중간의 암봉 

 국망봉  



국망봉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파란 초원도 매우 장관이지만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북동쪽의 상월봉에 있는 거대한 바위입니다. 이 바위의 공식이름은 "상월불각자"인데, 바위에 "불(佛)"자가 새겨 져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바위모습은 송이버섯 같기도 하고 사람의 주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핵이 폭발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거대한 남근석을 연상하게 됩니다. 동행자와 함께 저런 심벌을 가지고 있는 남성은 밤의 황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박장대소했습니다.

 국망봉 초원

 상월봉 초원

 북쪽 신선봉과 민봉 능선 


 

 상월불각자 바위  

 

상월봉에는 오르지 아니하고 우회해 늦은맥이재로 갑니다. 백두대간 종주 당시는 눈길이었지만 지금은 초목이 무성한 길을 걷습니다. 늦은맥지재에서 을전에 이르는 벌바위골은 우기에는 통행이 금지되는 구간입니다. 실제로 걸어보니 몇 차례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계곡의 물이 많아 통행을 할 수 없는 길입니다. 을전을 통과해 어의곡리로 나오니 등산버스가 기다라고 있습니다.


 

 늦은맥이재 이정표

이런 계곡을 건너야 함(우기에는 불가능)

 을전


오늘도 때를 잘 못 맞추어 소백산의 명물 철쭉을 만나지 못하였지만 비교적 좋은 날씨에 비로봉과 국망봉 그리고 상월봉 구간을 유유자적하게 거닐며 소백산의 능선과 대초원의 진면목을 마음껏 즐긴 뜻 깊은 산행이었습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2년 6월 6일 (수)
▲ 등산 코스 : 어의곡리-능선삼거리-비로봉-능선삼거리-초암사삼거리-국망봉-상월봉(우회)-늦은맥이재
                    -벌바위골-을전-어의곡리

▲ 산행 거리 : 16.1km
▲ 소요 시간 : 6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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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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