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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 자리에 위치한 환구단은 조선 고종 때에 있었던 환구단 터로, 사적 1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환구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으로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습니다. 사직고원의 사직단이 네모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환구단 터와 황궁우는 당시 고종이 황제로서 제천의례를 행하던 곳으로, 예로부터 천자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나 천황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 대해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ㆍ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병합한 일제는 1912년(융희 4년)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으며, 이 건물은 1968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습니다. 현재 황궁우(3층의 팔각정자)와 3개의 돌북, 그리고 석조 대문만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환구단이 아니라 그 부속유물입니다. 


 


 

환구단은 빌딩 숲 속인 조선호텔 안에 위치해 있어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호텔 경내로 들어서면 제법 넓은 잔디광장에 3층의 팔각정자인 황궁우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단 주변은 해태상이 지키고 있고 원통형의 내부도 매우 화려한데 천장의 용은 황제를 상징합니다.

 

 

 

 

 

 

황궁우 내부

 

 


 


환구단 입구에는 세 개의 돌북인 석고(石鼓)인데,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입니다. 화려한 용무늬는 당시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군요. 석조대문은 환궁우가 있는 안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2012. 7. 30) 

 

 석조대문   


 

 석고

 


 

 


《환구단 개요》(자료 : 다음 백과사전)

1897년(고종 광무 원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에 즉위했다. 당시 환구단이 마련된 곳은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자리로, 이때 만들어진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된 3층의 단이며, 중앙 상부는 금색으로 칠한 원추형(圓錐形)의 지붕이었다. 환구단에는 하늘과 땅, 별과 천지만물에 깃든 신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동지(冬至)나 새해 첫날에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다.

황궁우(皇穹宇)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의 팔각 정자로, 환구단이 조성된 2년 후인 1899년(광무 4년)에 환구의 북쪽에 건립하여 신위판(神位版)을 모셨다. 황궁우의 건물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3층은 각 면에 3개씩의 창을 냈으며, 천장의 칠조룡(七爪龍) 조각은 황제를 상징한다. 황궁우 앞에는 1902년(광무 7년)에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돌로 만든 북(石鼓)을 세웠는데, 이 북은 제천을 위한 악기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몸체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용(龍) 무늬가 있다.

한편, 1960년대 해체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환구단의 정문이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어 복원 공사가 진행되어 2009년 12월에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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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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