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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도립공원의 명산을 찾아
 

합천 가야산(伽倻山, 1430m)과 동명이산(同名異山)인 충남 가야산(678m)은 예산군, 서산시, 당진군에 걸쳐 있는 명산으로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는 산입니다. 예로부터 가야산 앞뒤로 위치한 서산, 예산, 당진, 홍성 등의 여러 고을을 "내포"라고 부릅니다. 지세가 산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난리 때에도 이곳에는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포평야에 우뚝 솟은 가야산은 주봉인 가사봉(678m)과 북쪽의 석문봉(653m)을 축으로 하여 옥양봉(621m), 일락산(516m), 수정봉(453m), 상왕산(307m) 등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원효봉(605m)이 뻗어 있습니다. 이들 산봉우리들을 중심으로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누구나 쉽게 산을 오릅니다. 또한 정상에서는 서해바다가 아련하게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해 찾는 이가 많은 곳입니다.

1년 열 두 달 중 마지막 12월이 시작되는 날, 안내산악회를 따라 길을 나섭니다. 서해안고속국도 해미나들목을 빠져 나온 등산버스는 647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우회전하여 서산목장을 통과한 후 개심사주차장에 도착합니다(09:45).


천년고찰 개심사

빤히 바라보이는 일주문 앞에는 호박, 마늘, 은행, 감자, 간장 등 지역특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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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일주문 앞의 상인들



개심사 일주문에는 "상왕산개심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개심사의 남쪽에는 일락산(516m)이 있고 북쪽에는 상왕산(307m)이 있지만, 일락산이 거리도 훨씬 가깝고 해발 고도도 높은데 왜 "일락산개심사"가 아닌 "상왕산개심사"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일락산의 북쪽 산자락보다는 상왕산의 남쪽 산자락을 택해 이름을 지었는지, 아니면 오래 전 창건당시에는 일락산은 산 이름이 없는 무명산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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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일주문



제법 호젓한 길을 따라 오르니 고찰 개심사(開心寺)가 반겨줍니다. 개심사는 백제시대(654년)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마음을 연다는 뜻의 개심(開心)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편안하고 아늑한 사찰입니다. 개심사는 작은 절이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꼽은 "5대 명찰"에 들 정도로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이 돋보이는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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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범종각과 안양루




범종각 옆에는 상왕산개심사 현판이 붙은 건물이 있는데, 해탈문을 들어서니 동일한 건물에 법고가 있고 또 안양루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안양루(安養樓)라고 하면 저절로 영주 부석사가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안양루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앞에 있는 누각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가 걸려 있어 매우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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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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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이 붙은 안양문 뒤로 보이는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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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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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개심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尋劍堂)과 무량수전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사찰입니다.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과 팔상전(八相殿) 등의 당우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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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사찰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급하게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일행을 따라 발길을 재촉합니다. 사찰의 뜰에 서 있는 단풍나무가 지난 가을 화려한 불꽃을 피웠음을 반증하듯 아직까지도 붉은 색이 완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감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땡감도 산새들이 먹은 흔적이 보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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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밥인 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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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단풍나무



부드러운 육산인 일락산

오른쪽의 산신각을 지나 부드러운 등산로를 따라 오릅니다. 초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바람 한 점 없어 이마엔 땀이 흐릅니다. 일락산 북쪽능선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몸을 돌려세웁니다. 일락산 능선은 전형적인 육산이라 발걸음이 매우 가볍습니다.

개심사 주차장을 출발한지 약 1시간 10분만에 일락산정상(516m)에 도착합니다(10:55). 정자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정상 표석이 없습니다. 다만 한쪽의 나뭇가지에 어느 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흰색의 아크릴 간판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줍니다. 관할행정관청이나 지역산악회에서는 힘들여 일락산을 찾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제대로 된 표석을 세워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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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매달린 일락산 정상표지



지금까지는 조망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정상에서 몇 걸음을 옮기자 우측으로 황락저수지와 서해 방면이 조망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연무(煙霧)로 인하여 서해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가니 가야할 석문봉이 버티고 서 있고, 등산로는 고도를 낮추어 사잇고개로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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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의 황락저수지와 서해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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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석문봉




돌탑이 있는 기암의 석문봉

사잇고개 좌측으로는 용현계곡으로 연결되지만 우리는 곧장 능선을 따라 오릅니다. 약 20분간 쉼 없이 오르니 석문봉의 돌탑과 가야산의 정상이 바라보이는 604봉입니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억새 너머로 아련하게 바라보이는 가야산 정상까지의 풍광도 일품이고 동시에 거리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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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봉의 억새 뒤로 보이는 가야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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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봉의 돌탑과 저멀리 보이는 가야산




드디어 태극기가 휘날리는 석문봉 정상(653m)에 도착합니다(11:40). 정상에는 예산산악회에서 세운 표석과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는 거대한 돌탑이 있습니다. 이 돌탑은 그 규모로 보아 치악산 비로봉 또는 태백산 문수봉의 돌탑을 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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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봉 정상의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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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봉 돌탑




석문봉에서는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거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쪽으로 이어진 가야할 암릉이 아찔하게 가로누워 있는 가운데, 지나온 일락산능선 오른쪽으로 옥양봉이 부드럽게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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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암릉 뒤로 보이는 가야산


산행의 백미인 석문봉∼가사봉

이제 가야산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르고 내리는 암릉 길에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나 가야할 암릉 길을 바라보면 아찔하다가도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마치 대단한 일을 해 낸 것 같은 자부심이 생깁니다. 때로는 로프에 의지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바위를 잡고 오르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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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본 석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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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능선




암릉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도 남다릅니다. 비가 내린 후 대기가 깨끗해 졌을 때 가야산을 오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오늘처럼 약간의 연무가 있을 경우 역광방향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만 흐릿해 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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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알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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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능선



부드러운 길과 암릉 길이 교대로 이어지다가 드디어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에 도달합니다(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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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본 지나온 능선과 멀리 보이는 석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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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산 정상의 통신시설




통신시설이 점령한 가야산 정상(가사봉)

가사봉(678m)은 KT 등의 통신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어 일반인들은 접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측으로 조성된 울타리를 따라 우회하여 이동합니다. 등산로가 매우 불편합니다. 이런 길은 주능선의 남쪽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주변 어디에도 정상표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정상표석이 없으면 아무리 풍광이 아름다운 산이라도 실망감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의 경우 정상(1,468m)은 군부대 시설물이 점령하고 있지만 인근의 중봉에는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어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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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정상의 통신시설


아늑한 계곡 길과 호젓한 마을

동남쪽으로 원효봉능선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요기를 하고는 다시 일어섭니다. 정상 밑의 팔부능선을 돌아가는 길이 이외로 까다롭습니다. 특히 포장도로로 내려서는 길은 더욱 그러합니다. 숲길과 도로를 번갈아 가다보니 헬기장입니다(13:30). 세 개의 장승이 서 있는 곳에는 "내포문화 발원탑"을 알리는 큰 표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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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의 내포문화 발원탑



헬기장에서 상가저수지로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숲길입니다. 지금은 나무들이 여름 내내 무겁게 매달고 있었던 잎사귀들을 모두 땅위에 내려놓아 다소 썰렁하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음은 다행한 일입니다.

무덤을 지나자 몇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큰 물통이 놓여 있는 도로변 고무호스에서는 맑은 물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개량지붕으로 통했던 슬레이트지붕의 처마 밑에는 새집인지 벌집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나무통 다섯 개가 가지런히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벽면은 거의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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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 달려 있는 새집(벌집?)



작은 대밭을 지나 포장도로를 걸어가노라니 돌을 쌓아 튼실하게 만든 긴 돌담이 보이고 그 담장 안에는 폐가가 있는데, 이웃에는 상가저수지가 있어 명당 자리일 것 같지만 도립공원 내라서 개발이 제한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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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돌담이 있는 폐가




천하명당이라는 남연군묘

하산 길 왼쪽 언덕 위에는 남연군묘가 있습니다. 남연군은 대원군 이하응의 부친입니다. 이  묘 자리는 천하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대원군이 한 지관의 말을 듣고 이 자리를 탐냈답니다. 어느 날 절에 불이 나고 절을 지키던 승려가 연못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이 됐는데 모두 대원군의 소행이라고 전해집니다.

당시 그 지관은 대원군에게 "이 자리는 2대에 걸쳐 왕이 난다"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묘를 쓴 이후 대원군의 아들인 고종과, 손자 순종황제가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의 후손은 영화를 누렸지만, 이로 인해 조선왕조가 망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풍수에 문외한인 글쓴이가 보아도 이 묘터는 가야산군의 옥양봉, 석문봉, 그리고 가사봉이 반원으로 감싸안고 있어 그야말로 명당처럼 보입니다. 이들 봉우리들은 좌청룡 우백호로서 묘 주인을 보호하고 후손에게 복을 내릴 상입니다. 마침 한 무리의 방문객이 찾아와 안내자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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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묘 뒤로 보이는 가야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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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와 비석



남연군묘를 뒤로하고 아래로 내려옵니다. 길목에는 얼굴에 주름진 촌노(村老) 셋이 나란히 앉아 각종 나물을 팔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달래 등 두 가지의 나물을 구입합니다. 한 봉지에 2천 원입니다. 글쓴이와 동행한 이가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여기, 남연군묘가 명당이라는데 이 묘의 덕을 본 게 있나요?"
그러자 촌노는 손사래를 칩니다.
"우린 그런 것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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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을 파는 아낙네들



그렇습니다. 지신(地神)은 당연히 명당터의 후손에게만 복을 내리지 그 주변의 일반 백성에게까지 축복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들도 복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묘지가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기에 등산객과 일반방문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들이 지나가면서 나물 한 봉지라도 더 팔아주면 그게 바로 조그마한 복일 것일 테니까요.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일품요리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니 엄청나게 규모가 큰 주차장이 있습니다(14:30). 오늘 널널한 산행에 4시간 4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국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웁니다. 이 산악회는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특히 국을 끓이는 손맛은 전국의 어느 유명 음식점 못지 않습니다.

2주 전 영월의 구봉대산 산행을 마치고 법흥사 입구로 하산하여 한 주막에 들러 산악회제공 식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 가게 주인의 말 한마디가 지금도 귓전에 맴돕니다. "내가 여기서 가게를 오래해 그 동안 많은 산악회에서 준비해온 식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맛있는 음식냄새가 나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일품 국밥으로 배를 채우면 이 순간만은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가야산의 석문봉과 가사봉 능선 같은 명산을 답사한 후는 더욱 그러합니다. (2007. 12.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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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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