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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소재
<김삿갓 문학관>은 방랑시인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테마형 전시관입니다. 

 


 

 

전시관은 기획전시실, 영상실, 난고문학실, 일대기실,
자료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야외광장에는 선생의 일대기를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여
누구나 쉽게 그의 생애와 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두었으며
김삿갓을 묘사한 조각상이 여럿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근에는 김삿갓 문학조각공원과 묘지가 있으며
마대산 등산로인 어둔이계곡에는
김삿갓이 은둔생활을 한 생가가 자리잡고 있어
차분히 돌아보면 좋을 것입니다.
(2013. 7. 30)     

 김삿갓 문학조각공원

 김삿갓 묘지

김삿갓 생가  


《김삿갓(난고 김병연 1807-1863)의 생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그의 일생은 여러 가지 기록과 증언들이 뒤섞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의 집으로 피했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안근(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詩)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 뒤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참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 두고 집을 떠났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 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몰락양반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무너져 가는 신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한시의 희작(戱作)과, 한시의 형식에 우리말의 음과 뜻을 교묘히 구사한 언문풍월이 특징이다. 구전되어오던 그의 시를 모은 〈김립시집〉이 있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 기슭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웠고, 강원도 영월에도 전국시가비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자료 : 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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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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