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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남자로 부터 받은 사탕





흔히 하루 일이 잘 안 풀릴 때 일진(日辰)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진은 그 날의 운세를 뜻하니까요. 며칠 전 글쓴이도 일진이 매우 안 좋은 날이었습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다녀왔는데 귀경하는 버스 내에서 옆 좌석에 앉은 노인이 약주를 많이 마시고는 횡설수설 술 주정을 하며 매우 시끄럽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 자꾸만 말을 걸어와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려는 글쓴이를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났으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인데 문제는 지하철에서 또 다시 골치 아픈 분을 만난 것입니다. 5호선 강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방화방면으로 가고 있는데 나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 왔습니다. 글쓴이가 보고 있는 <난고 김삿갓 문학관> 홍보간행물(brochure, 브로셔)을 다 보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개략적으로 다 보았지만  혹시 이 남자가 자기에게 달라고 할 까봐 나는 "아직 다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문학관 견학후기를 작성해 블로그에 올리려면 이 안내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이 안내서를 누구에게 받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영월의 문학관에 직접 다녀오는 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김삿갓이 전국을 떠돌며 밥을 얻어먹었는데 유일하게 시(詩)를 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얻어먹지 못한 고장이 있다며 그 장소가 어딘지 안내서에 나와 있을 것이라며 잘 읽어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면서 "김삿갓을 잘 아느냐?"고 반문했더니 남자는 김삿갓이 먼 선대 조상이기는 하지만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남자는 나중에라도 꼭 그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용히 가려고 눈을 감았는데, 남자는 느닷없이 내 나이를 물었습니다. 난 "아직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남자는 뜻밖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나이를 알려 줄 필요가 없으니 잘 했다"고 합니다. 이건 사람을 완전히 "들었다 놓았다"하는 격이네요. 요즈음 개그콘서트에도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잠시 후 남자는 나에게 어디에 사는 지 물어와 서울에서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자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서울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 유식한 체 합니다.

나도 이 남자에게 어디 사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김포신도시에 산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김포신도시와 올림픽대로가 바로 연결된 후 김포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시간이 30분 단축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 졌다고 합니다. 또 김포는 앞으로 부동산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할 요지라면서 자신의 말을 들은 친구는 신도시 아파트를 구입한 후 벌써 집 값이 1억원 올랐는데, 아파트 두 채를 구입해 횡재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가장 발전가능성이 큰 지역이 바로 김포라는 것입니다. 김포에서는 화물을 싣고 서해를 통해 북한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부동산 투자를 했다니 참으로 선견지명(?)이 있어 보이지만 그 통일이라는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나는 남자에게 언제쯤 통일이 되리라고 보는지 물었는데 남자는 북한 정치지도자 김정은이 무모한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서구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워낙 많이 배우고 머리가 좋아 실권만 잡는다면 극적으로 통일을 이룰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김정은의 약력을 검색했더니 프랑스와 스위스로 유학하여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고 되어 있네요. 그는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김정은을 서방세계로 유학을 보낸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라고 강조하네요. 또한 개성공단 문제도 결국은 잘 풀릴 것이랍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 이토록 민감한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초콜릿을 나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작은 초콜릿의 포장지가 빛 바랜 것으로 보아 제법 오래된 듯 했습니다. 나는 거절할 명분을 찾다가 치아가 안 좋아서 초콜릿은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주머니를 뒤져 박하사탕을 꺼내서는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또 거절하기가 뭣해 사탕을 받고는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지금 즉시 먹으라고 재촉합니다. 나는 귀가해 저녁을 먹어야 하므로 지금 단 것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남자는 "박하사탕은 치아에 참 좋은 것이다.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받아들여야지 왜 고집을 피우나? 지금 안 먹으면 분명히 가지고 있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냥 버릴 것이다"라면서 꼭 어른이 어린아이 나무라듯 합니다. 괜히 더 대꾸했다가는 또 무슨 말을 할지 신경이 쓰여 그냥 말문을 닫은 후 목적지에 도착해 내가 먼저 내렸습니다.

남자가 정말 선의로 초콜릿과 박하사탕을 나에게 준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대화내용으로 봐서 난 어쩐지 이 남자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나도 살만큼 살았는데 지하철에서 이런 황당한 상황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낯선 이가 준 박하사탕을 보며 세상에는 참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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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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