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 마리면과 거창읍의 경계에 위치한 아홉산(795m, 취우령)은 거창의 진산이라 불리는 건흥산(572m)과 남북으로 약 3.3km떨어져 있습니다. 거창읍을 한눈에 굽어보는 건흥산에는 백제 부흥군이 신라에 대항해 싸운 거열산성이 자리하며, 673년에는 신라의 아진함이 당군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역사의 엄숙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건흥산에서 바라본 거창읍내
산행들머리는 취우령 서쪽 37번 국도가 북상하는 상율마을입니다. 일반적으로 밤율(栗)자가 들어간 마을은 밤의 고장인데 여기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전까지 비가 내린 듯 하늘은 흐려 매우 차분하고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수밭을 지나자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반겨주네요. 정자를 뒤로하고 청류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접어듭니다. 넓은 길을 조금 가다가 우측의 사잇길로 진입했는데, 이제부터 잡목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등산로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아 잡목이 무성해 이들이 발과 얼굴에 스치는 바람에 발걸음이 늘어집니다.
수수밭
잡목이 무성한 등산로
745봉에 도착할 때까지 조망을 전혀 하지 못해 섭섭했지만 여기서 남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한 아홉산(795m, 취우령)에 오르니 북쪽을 제외한 3방향으로 시원한 조망이 터집니다. 동쪽으로는 금귀산(710m)과 보해산(912m), 서쪽으로는 금원산(1,363m)과 기백산(1,331m)이 있지만 분간할 수가 없군요. 이름 모를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짙은 구름으로 인해 시계가 선명하지 못한 게 옥의 티입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에는 취우령이라는 대형표석이 반겨주는데 솔직히 산(山), 봉(峰), 대(臺), 령(嶺) 등의 구별은 매우 헷갈립니다. 산 이름에 령(嶺)이 들어간 대표적인 곳은 대관령 북쪽 백두대간 길의 선자령이지요. 그래도 취우령에 아홉산이라는 다른 산 이름이 있음은 다행입니다.
740봉 갈림길 이정표
마타리
아홉산(취우령) 이정표
동쪽의 금귀산-보해산 방면
여기서 남쪽 건흥산까지는 3.3km이지만 약간의 내리막에 매우 부드러운 길이어서 정말 걷기 좋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이토록 몸과 마음이 편안하기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3km이상을 걸어 건흥산(572m)에 도착합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일품이군요. 지나온 아홉산도 그렇지만 이곳 건흥산도 이처럼 탁 트인 조망을 선사하니 그야말로 거창의 산들은 모두가 명산입니다. 거창읍내가 굽어보이는 정상주변에는 거열산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열산성은 삼국시대 말 백제와 신라가 쌓았다는 산성입니다. 이 일대는 거열산성 군립공원인데, 공원의 이름에는 보통 산 이름이 들어가지만 이처럼 산성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남한산성도립공원처럼 매우 유명한 때문이겠지요.
건흥산에서 바라본 거창읍내
복원된 거열산성을 지나 체력단련시설이 있는 하부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을 마시고는 낮은 출렁다리를 건넙니다. 잘 조성된 길을 따라 점점 고도를 낮추니 거창위천이 흐르는 건계정입니다. 건계정(建溪亭)은 송나라 때 고려로 귀화한 거창장씨(居昌章氏)의 시조를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1905년 건립한 정자로 풍경이 매우 수려한 곳에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건계정교를 건너 좌측으로 조금 가면 산성교 옆 주차장입니다. 오늘 산행에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산행거리는 약 10km이지만 처음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등산로가 매우 부드러운 탓입니다. 때로는 이런 편안한 산행이 오히려 힐링(healing)이 됩니다. 물이 풍부한 위천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더군요. 이정표가 잘 구비된 아홉산과 건흥산에서 만끽한 시원한 조망도 기분을 상쾌하기 만드니 오늘 산행은 만점입니다.
건계정교
건계정과 건계정교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3년 9월 7일(토)
▲ 등산 코스 : 상율마을-745봉-사홉산(취우령)-건흥산-거열산성-하부약수터-건계정-산성교 옆 주차장
▲ 등산 거리 : 9.8km
▲ 소요 시간 : 3시간 45분
▲ 산행 안내 : 기분좋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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