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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를 산 세대들은 누구나 이기붕(李起鵬 1896-1960)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3.15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된 후 4.19혁명으로 사임하고
며칠 후 전 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이기붕의 생애

호는 만송(晩松).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 주에 있는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뉴욕에서 허정 등과 함께 〈삼일신문 三一新聞〉을 발간했으며 1934년 귀국했다. 1945년 이승만의 비서가 되었고, 194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대한적십자사 등의 이사가 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시장, 1951년 국방부장관이 되었으며 같은 해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민의원 의장을 거쳐, 1960년 3·15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관계·정계에 재직할 때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은 그의 정치적 전횡(專橫)은 민원(民怨)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청년학생들의 4·19혁명으로 부통령을 사임하고 경무대(景武臺)에 피신해 있다가 장남 강석(康石)의 권총으로 전 가족이 자살했다.(자료 : 다음 백과사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는 이기붕 별장이 있는데,
고성 8경의 하나(제3경)인 화진포 경관지구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및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함께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기붕 별장입구


 


 


 


 

이기붕 별장은 1920년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서
해방 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가 개인적으로 이용하다가 폐쇄되었으나
1999년 개수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송림속에 자리잡은 별장은 그 내부가 매우 소박해 보이며
이기붕과 박마리아(1906-1960)에 관련된 사진과 집기들이 전시중입니다.


 


 


 


 


 


 


 


 


 


 


 


박마리아의 생애

1923년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홀리대학에서 수학하고, 1932년 미국 테네시 주 스카렛대학 및 피바디사범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1954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에 이화여전 강사를 지냈으며 1935년에 이기붕(李起鵬)과 결혼했다. 1935~45년 YWCA 총무 등을 지냈으며, 8·15해방 이후에는 대한 걸스카우트 및 대한부인회 등을 지도했다. 1954년에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을 지냈으며, 1960년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나자 경무대로 피신, 장남 이강석의 권총으로 가족 모두가 자살했다.(자료 : 다음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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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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