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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溫達山城)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사적 제264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신라가 침입해 오자 이 성을 쌓고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성의 둘레는 683m, 동쪽 높이는 6m, 남·북쪽 높이는 7∼8m, 서쪽 높이는 10m, 두께는 3∼4m입니다. 산성 아래 남한강 변을 따라 절벽이 있는데, 이곳에 석회암 동굴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조(溫達條)에 따르면 온달(?-590)은 집안이 가난하여 밥을 빌어다 눈먼 어머님을 봉양하며 착하게 살았는데, 얼굴이 우습게 생겨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은 어린 평강공주가 울기를 잘하여 놀릴 때마다 "공주야, 네가 울기를 잘하니 나중에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렸다고 합니다. 공주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고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평강공주는 임금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궁중(宮中)을 나와 온달을 찾아가 부부가 되었습니다.

평강공주(平岡公主)는 바보온달에게 궁중(宮中)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서 집과 밭을 마련하고 말을 사서 준마로 키우고 공부와 무예를 닦게 뒷바라지했습니다. 고구려에서 매년 3월 3일이 되면 왕과 신하 및 병사들과 사냥을 하였는데, 온달의 사냥실력과 무예실력이 남달라 왕이 불러 그 이름을 묻고는 놀랐다고하지요. 그 당시 중국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오랑캐를 물리치니 왕이 기뻐하여 사위로 인정하고 대형(大兄)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영양왕1년(590)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회복하기 위하여 출정을 자원하여 신라군과 아차산성(阿且山城)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고 전해집니다.(서울과 구리의 경계에도 아차산성이 있어 헷갈리는군요) 

온달관광지입구에서 드라마촬영 세트장의 왼쪽에 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잘 조성된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정자(사모정)에서 남한강을 조망하고 조금 더 오르면 산성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성의 축성높이가 매우 높아 보이는군요. 성에서 바라보는 주변풍광이 일품입니다. 구비치는 남한강 뒤로 영월 태화산이 우뚝하고 동남쪽으로는 소백산록의 산 그리메가 산수화를 보듯 합니다.


 


 


 

 드라마 세트장

 사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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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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