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바위저수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노고산(429m) 남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금바위저수지는 노고산을 오르는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저수지 안쪽 끝 노고산을 오르는 길목의 저수지 변에는
여러 기의 돌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누가 언제 쌓았는지 모르겠지만
돌탑을 볼 때마다 그 정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저수지 끝에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공덕비가 있고
그 뒤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묘소가 있습니다.
묘소 아래에는 자그마한 인공호수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상재 공덕비
월남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은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 개화파운동가였으며,
일제 강점기 한국의 교육자·청년운동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언론인입니다.
그는 독립신문창간과 독립협회의 창립을 주도했고,
1906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도왔으며,
신간회 초대회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묘소의 봉분은 최근에 보수를 한 듯
잔디가 착상되지 못한 모습입니다.
마침 3월 28일은 이상재 선생의 87주기여서
서울YMCA 대강당에서 기념식을 가졌다는 보도입니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우리 후손들이 잘 계승해야 하겠습니다.
월남 이상재
월남은 박정양의 개인비서로 관계에 투신하였으며 1881년 일본을 시찰, 개화 사상을 접하였다. 귀국 이후 개화파 관료로 활동하다가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사퇴하였다. 정치적 스승인 박정양의 몰락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미국공사관 2등 서기관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고 외교에 개입한 청나라 사신을 물리치고 직접 외교의 길을 열었다. 귀국 이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서 민중 계몽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1899년 11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는 강제 해산되고, 1902년 개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으며 한일합방 이후에는 관직을 사퇴하였다. 1905년 이후에는 윤치호와 함께 YMCA를 지도하였으며, 1919년의 3·1 만세 운동에는 참여를 거부하였으나 관련자로 지목되어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과 청년의 계몽, 각성을 역설하는등 1920년대 중반 조선일보 사장과 신간회 활동하였다. 개인적으로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전셋방을 전전하였다. 그는 후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의 정치적 스승 중의 한사람이었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고려의 학자 이색의 후손이다. 자는 계호(季皓), 아호는 월남(月南)이다. 본관은 한산이다.(자료 : 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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