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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화랑로32길(석관동) 소재 조선왕릉 의릉(懿陵)은 제20대 왕인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입니다. 경종의 아버지는 숙종, 어머니는 유명한(?) 장희빈입니다. 경종은 1720년 33세로 즉위하였으나 몸이 병약하여 두 왕비(원비 단의왕후, 계비 선의왕후)를 두었음에도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했는데, 즉위한지 두 달만에 이복동생 연잉군(후일 영조)을 왕세자로 삼고 국정을 맡겼으며, 4년 후 승하했습니다.


 


 


 


 


 


경종도 어렸을 적에는 매우 총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4세 때 모후인 희빈이 거처에 신당을 짓고 인현왕후를 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게 발각되어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약을 받은 희빈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숙종에게 애원을 거듭해 세자를 희빈에게 대려다 주었는데, 갑자기 독기 서린 눈빛으로 변한 희빈이 세자에게 달려들어 세자의 하초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고 합니다. 곁의 환관들이 희빈을 떼어놓았지만 놀란 세자는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경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다가 자식도 낳지 못한 채 승하했습니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음수대가 있는데 얼굴모양의 조각상이 매우 특이합니다. 금천교를 지나면 홍살문입니다. 홍살문 뒤로 배위(임금이 절하는 곳) 옆에는 참도(신도와 어도)가 정자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정자각 옆에는 비각이 있어 여느 왕릉과 그 배치가 유사합니다. 다만 능침공간의 능의 배치는 쌍릉이지만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를 가로로 나란히 배치한 게 아니라 세로로 배치했는데 이와 같은 동원상하릉 형식은 여주 영릉(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릉)과 이곳 의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이는 현지의 지형상 능역의 폭이 좁아 옆으로 나란히 배치할 경우 산천의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날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능침관람대라도 있었더라면 사진을 찍었을 텐데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은 상하능의 구분이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곡장(능 주변의 담장)이 있는 능은 경종, 없는 곳은 선의왕후의 능임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특이한 음수대


 


 


 


 


 

 비각

 곡장이 있는 경종의 능

 곡장이 없는 선의왕후의 능 

 의릉 조감도



능이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지만 서쪽의 뒷산인 천장산에 산책로를 잘 조성해 놓아 시간여유가 있으면 도심 속에서 향긋한 숲 내음을 맡으며 걷기에 참 좋습니다. 능선에 서면 북한산과 아차산 등도 보이며, 능선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맛이 쏠쏠합니다. 의릉 경내에는 유달리 산딸나무가 많더군요. 사릉 능침의 좌측에 (구) 중앙정보부 회의실이라는 허름한 건물이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글을 작성하면서 보니 1960년대 초반 의릉경내에 중정건물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가 국가정보원(전 중앙정보부)이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사를 가자 1996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게 되었답니다.

 산책로 가는 길


 

 철거예정 조망대

 북한산 능선

 아차산 능선

 수락산 및 불암산


 

 산딸나무

 글쓴이가 걸었던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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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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