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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과 원경왕후가 잠든 헌릉



KBS 1TV 주말드라마 <정도전>은 부패하고 무능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세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공부를 하는 참 좋은 드라마입니다. 다큐멘터리 성격의 딱딱한 역사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18.4%라는 높은 시청률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고려말 권신 이인임의 전횡,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최영 장군의 축출, 포은 정몽주의 피살, 이방원과 정도전의 갈등 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방원의 왕자의 난까지 다루어지겠지요. 이성계는 두 부인(실제로 부인은 후궁 4명을 포함한 6명이었지만 아들을 낳은 부인은 2명 뿐)과의 사이에 8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첫째부인 한씨(후일 신의왕후)에게서 5명(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둘째 부인 강씨(후일 신덕왕후)에게서 2명(방번, 방석)을 낳았습니다. 첫째부인 한씨는 태조 즉위전인 1391년 사망했습니다.

이 중 조선의 개국에 가장 큰공을 세운 이는 다섯째 아들 이방원(정안대군)이었지요. 그는 정도전을 도왔고, 최대정적인 정몽주를 죽여 고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런데 태조 이성계는 강씨의 소생인 방석(의안대군)으로 세자를 책봉했습니다. 야심가인 방원은 계모인 강씨와 정도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갈았지요. 그러다가 장남인 방우와 6남인 방연이 죽고 강씨도 병사하자 방원은 이른바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배다른 형제인 방번과 방석 그리고 정도전마저 죽이고 맙니다. 그런 다음 자신은 왕위에 욕심이 없음을 내보이기 위해 둘째형인 방과를 세자로 추대했는데 이가 바로 조선의 2대왕인 정종입니다. 정종은 즉위한지 2년 만에 왕위를 실세인 이방원에게 양위했는데, 바로 조선 3대왕 태종입니다. 따라서 <정도전>에 등장하는 조선 임금은 태조-정종-태종입니다.

                                                                                이성계 가계도


◆ 태조 이성계의 왕릉인 동구릉 건원릉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릉은 동구릉에 있습니다. 동구릉(사적 제193호)은 이름 그대로 한양의 동쪽인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인창동 66번지)에 소재한 9개의 능입니다. 이곳에는 조선의 제1대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5대 문종, 14대 선조, 18대 현종, 21대 영조, 24대 헌종, 그리고 여러 왕비의 무덤이 있습니다. 동구릉 중에서 태조 이성계의 릉은 건원릉입니다.


 



조선왕릉의 봉분에는 대개 잔디가 심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봉분은 눈이 쌓여 새하얗습니다. 그러나 건원릉의 봉문은 잔디대신 억새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는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묻히기 원했던 태조를 위해 태종이 아버지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봉문에 심었기 때문이고 합니다. 능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지만 봉분에 눈 대신 억새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억새가 무성한 봉분
 


◆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정릉

정릉(貞陵/사적 제208호)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원비는 신의왕후였으나 태조가 왕위에 즉위하기 전인 1391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계비인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된 것입니다. 신덕왕후는 태조-신의왕후 사이에 태어난 6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할 정도로 태조의 신임을 받았고 또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396년 신덕왕후가 병환으로 별세하자 2년 후 그녀의 정적이었던 이방원(후일 태종)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가 낳은 두 아들인 방석과 방번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신덕왕후는 처녀시절 고려장수인 이성계에게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넨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갈증에 목마른 장수가 급히 물을 마시다가 체할지도 모른다는 배려였지요.

태조는 신덕왕후가 죽자 궁궐에서 가까운 정동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태조가 숨지자 왕위계승문제로 계모와 불화를 겪었던 태종은 복수를 시작해 신덕왕후를 후궁 강씨로 격하시키고 능을 지금의 자리인 정릉동으로 옮긴 다음 능의 석물은 광통교 돌다리를 짓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 정종의 왕릉인 후릉

정종(이방과)이 잠든 후릉은 황해도 개풍군에 위치하고 있어 답사가 불가능합니다.



◆ 태종 부부가 잠든 헌릉 

서울 서초구 내곡동(헌인릉길) 소재 <헌인릉>에는 헌릉과 인릉이 있습니다. <헌릉>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며, <인릉>은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입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5남으로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공을 세웠습니다. 제1-2차 왕자의 난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태종(재위기간 1400-1418)은 3남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헌릉과 인릉에는 능침공간으로 오르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헌릉의 경우 인릉보다는 관람대가 가까워 능과 석물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조선왕릉은 보호목적으로 능침공간의 접근은 제한되어 있는데, 이토록 관람대를 조성해 둔 것은 참 좋은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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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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