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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서 가장 비운의 임금이
숙부인 수양대군(후일 세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이라면
가장 비운의 왕세자는 아버지(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일 것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융건릉은 융릉과 건릉을 말합니다. 
융릉(融陵)은 사도세자와 부인 혜경궁 홍씨의 능이고,
건릉(健陵)은 제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입니다.

 

 

 

 

 

 

 

 

 

 

 

 

 재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1735-1762)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 났지만
영조를 대신에 정무를 보게 되면서 노론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결국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영조는 28세에 죽은 세자를 슬퍼하며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아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으로,
1899년에는 장조(莊祖)로 추존하였습니다.

 

혜경궁 홍씨(1735-1815)는 재상 홍봉한의 딸로서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후일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왕후가 되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남긴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은
궁중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습니다.

 

융릉의 모습도 조선왕조의 여느 왕릉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융릉에는 2가지의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왕릉 입구에 원형 연못인 곤신지가 있는 것입니다.
원형 연못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버지를 흠모했던 정조의 효심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넓은 참도입니다.
홍살문 뒤의 참도는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길로
신도와 어도로 나뉘어 집니다.
거의 모든 조선왕릉의 참도는 홍살문 뒤 중앙부에 조성되어 있는데 비해
융릉의 참도는 매우 넓습니다.

 

 

 

 

 배위

 

 참도

 

 정자각에서 바라본 참도

 

 


정자각 좌우로 수라간 및 비각이 있으며 능침은 부부합장릉입니다.
능침구간은 출입제한으로 접근할 수 없군요.

 

 

 

 정자각

 

 비각

 

 능침공간

 


 

 

융릉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어 이 또한 장관입니다.
윤건릉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더군요.
아마도 수원 화성을 건립한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듯 보여집니다.
(2014. 7. 5) 

 

 

소나무 군락지

 

 

사도세자(1735-1762)
 
조선 제21대 영조의 둘째 아들. 이름은 선(?)이고 자는 윤관(允寬)이며 호는 의재(毅齋)이다. 어머니는 영빈 이씨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이다. 이복형 효장 세자(孝章世子)가 요절하자 2세 때 세자에 책봉되었다. 15세인 1749(영조 25)년부터 영조의 명을 받고 대리 기무(代理機務)를 보았다. 이때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노론과 반목하다가 1762(영조 38)년 김한구, 홍계희, 윤급 등에 의해 모함을 받아 영조에 의해 폐세자(廢世子)가 되었고 뒤주에 갇혀 8일만에 굶어 죽었다. 영조에 의해 사도(死悼)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그의 아들 정조가 1777(정조 1)년 장헌(莊獻)으로 상시(上諡)하였으며, 1899(광무 3)년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 가는 길 : 수도권전철 병점역 2번 출구로 나와 34번, 34-1번, 46번
또는 35-1번 버스를 타고 융건릉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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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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