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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는 충남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기리기 위해
1706년(숙종 32)에 세운 사당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이충무공 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였으며
광복 후 1967년 국가에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실시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약 16만 여평에 달하는 이곳 이충무공 유허(현충사 경내)
(사적 제155호)에는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유물관·고택(古宅)
·활터·홍살문(紅―門)·정려(旌閭), 이면의 묘소 등이 있는데,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매우 넓은 주차장에는 이순신 장군이 쓴 친필휘호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가  큰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휘호는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정에서도 본 것입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2008-2011 기간 중 현충사 정비사업을 통해 조성했습니다.


유물관에는 국보인 ≪난중일기 亂中日記≫,
보물인 장검(長劒)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이곳의 전시물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경상남도 통영시의 충렬사(忠烈祠)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충무문은 본전인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진입로에는 반송 등 희귀한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네요.

 

 

 

 

 

 

 

 

 

 

 

 

 

 

 

 

홍살문을 지나면 충의문 뒤로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현재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당에는 현충사라는 현판(박정희 친필)이 붙어 있습니다.

 

 

 

 

 

 

 

 

 

 

 

 

 

 

 

 

 

 

 


본전 우측으로는 이순신 장군 고택이 있습니다.
고택은 이순신이 자라난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왔으며,
몇 차례 중·개수되었습니다.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입니다.

 

 

 

 


은행나무 뒤로는 장군의 후손들의 묘가 있습니다.
장군의 3남인 이면의 묘소는 들리지 못했습니다. 

 

 

 

 

연못 옆에는 정려각이 있습니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완(莞), 4대손 홍무(弘茂), 5대손 봉상(鳳祥),
효자 제빈(悌彬) 등 5인의 편액(扁額)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면은 이순신의 셋째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면서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정려

 

 

 

 

☞ 시기적으로 가장 칙칙한 계절에 방문하여 사진이 볼품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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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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