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매우 많습니다. 가장 높은 산은 백두대간 상에 솟은 장수·함양의 백운산(1,279m)이며, 가장 잘 알려진 산은 동강변에 솟은 정선의 백운산(887m)입니다. 광양의 백운산(1,217m)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강원도 원주에도 두 개의 백운산이 있습니다. 높은 백운산(1,087m)은 원주시 판부면과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으며, 낮은 백운산(천지봉, 536m)은 높은 백운산(1,087m)의 북쪽능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높은 백운산(1,087m) 인근에 작은 백운산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도상에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백운산의 중간지점에 어깨봉(금대봉, 711m)이 있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에 저고리봉(481m)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깨봉과 저고리봉은 산 이름이 매우 독특하며 원주시에서 정상표석도 잘 세워두었지만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면 원주에는 매우 특이한 산 이름이 많은 듯 합니다. 두 백운산을 연결하는 남북으로 뻗은 능선의 동쪽에 벼락바위봉(938m)과 보름가리봉(885m)이 있거든요.
이번에는 백운산(천지봉)에 올랐다가 어깨봉과 저고리봉을 거쳐 하산할 계획입니다. 산행들머리는 원주시 판부면 안중천 버스정류소입니다. 백운산 천지봉의 북서쪽 지방도로 변입니다. 차량통행 금지 쇠줄을 넘어 남쪽의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섭니다. 도로 양쪽에는 택지개발을 해 둔 것 같은 데 아직 건축은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쪽 산아래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양봉업자의 벌통이 놓여 있고 인부 2명이 보호장구를 쓴 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벌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등산스틱을 취고 있는 왼쪽 손가락을 비호처럼 톡 쏘고는 달아납니다. 손가락이 보이는 장갑을 낀 게 화근이었습니다. 벌이 쏜 자리에는 벌침이 꽂혀 있어 무척 아픕니다. 손으로 벌침을 뽑은 후 상처부위를 이빨로 눌러 독을 빼냈지만 벌에 쏘인 자리가 얼마나 따가운지 등산스틱을 쥐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나마 상처부위가 부어 오르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로군요. 약 20명의 등산객이 현장을 지나갔는데 하필 나홀로 벌에 쏘이고 말았으니 정말 재수 옴 붙었습니다. 그런데 귀가한 후부터 손가락이 약간 부어 올라 벌레물린데 사용하는 연고를 발랐지만 좌측 약지손가락은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안중천 버스정류소
차량통행 금지도로
뒤돌아본 모습
양봉벌통
선두그룹을 비롯한 등산객들이 경사진 언덕을 오릅니다. 언덕에는 토사의 흘러내림을 방지하는 그물망이 쳐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덕을 오르고 맨 뒤에 3명이 남은 시점에 양봉인부가 등산객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쪽은 길이 아닌데 왜 올라가나? 그물망을 쳐 둔 것을 보면 모르나?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왜 함부로 지나가 언덕을 망가뜨리나? 좌측으로 돌아가면 길이 있는데 왜 그러나?"라고 매우 못마땅한 소리를 합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좌측으로 돌아가라고 할 것이지 왜 다 오르고 난 후에 이렇게 등산객들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모르겠습니다. 뒤에 남은 3명은 양봉업자의 말대로 좌측으로 돌았는데 불과 10미터 정도 더 걸은 것 같습니다. 선두그룹을 포함한 등산객들도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음을 알았더라면 일부러 경사면을 치고 바로 오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아무튼 글쓴이로서는 벌레 쏘인 것만도 기분이 나쁜 일인데 잔소리까지 듣고 보니 더욱 기분이 꿀꿀합니다. 산길도 매우 가파릅니다. 주능선에 도착하니 길이 매우 분명합니다. 두 차례의 급경사를 오르고 나니 백운산(천지봉, 536m)입니다. 목판에 걸어둔 안내현판이 길잡이구실을 톡톡히 하는군요.
가파른 경사면
파란 숲
백운산 천지봉
백운산을 뒤로하고 북쪽의 능선을 따라 갑니다. 숲 사이로 가끔 동쪽 치악산 능선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망을 거의 할 수 없습니다. 신록의 계절에 하는 산행은 나무숲으로 인해 산 속의 공기는 매우 좋은 대신 조망이 곤란한 게 옥의 티입니다. 부드러운 능선을 걸어가면서 매우 작은 봉우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앞 서 가던 베테랑 등산객이 매봉산(546m)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냥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갔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매봉산은 보통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음지도"에는 그 이름만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백운산(천지봉)에서 북쪽으로 가는 능선 상의 평범한 지점이어서 별도의 산으로 카운트하기는 곤란할 듯 합니다. 물론 버젓이 산 이름이 있으니 이곳을 산으로 불러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뒤에 보이는 치악산 능선
매봉산
매봉산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등산로 쉼터(537m)가 있는데 이곳이 오늘 산행 중 가장 조망이 좋은 유일한 장소입니다. 동쪽으로 보름가리봉과 벼락바위봉 너머 치악산의 줄기가 선명합니다. 쉼터를 뒤로하고 점점 고도를 높이니 드디어 어깨봉(711m)입니다. 현지에는 원주시에서 세운 모범적인 정상표석이 반겨주는데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어깨봉은 삼거리 갈림길입니다. 저고리봉은 우측에 있지만 우리는 좌측의 큰바람골산으로 갑니다. 어깨봉을 살짝 내려와 다시 오르면 큰바람골산(716m)입니다. 큰바람골산은 어깨봉 바로 인근(7분 거리)에 있고 해발고도도 겨우 5m 높은데 불과하므로 별도의 산으로 보기는 매우 거시기합니다. 다만 봉화지맥을 타는 사람들은 지나온 매봉산과 마찬가지로 큰바람골산도 매우 의미 있는 산으로 본다고 하더군요. 여기서도 조망이 전혀 안됩니다.
능선의 쉼터
보름가리봉 뒤로 보이는 치악산 능선
우측 끝에 보이는 높은 백운산
어깨봉
큰바람골산
어깨봉으로 되돌아와 저고리봉으로 갑니다. 어깨봉에서 한참동안 고도를 낮춥니다. 솔직히 저고리봉은 보통의 지도에는 없는 산이어서 독립된 산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등산을 왔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 산에 올라보니 저고리봉은 별도 산으로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고도를 최대한 낮춘 안부에 오늘 처음으로 지나온 "어깨봉 700m, 서곡"(거리 표기 없음)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 저고리봉(481m)입니다. 정상에는 긴 의자와 멋진 정상표석이 있지만 역시 조망은 할 수 없습니다.
안부 이정표
시원한 숲
저고리봉
이제 하산할 차례입니다. 조금 내려서니 길이 좌우로 갈라집니다. 우리는 좌측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보조로프가 말뚝에 매어져 있어 안전한 하산을 도와줍니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이런 가파른 길을 만나면 자칫 페이스조절에 실패해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에 매우 조심해야 하는 구간입니다. 급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백운산 자연휴양림 정문입니다. 좌측의 안쪽 골짜기에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좌측의 대용소골의 서곡천을 따라 밖으로 나옵니다. 송암정(용수골 버스정류소) 인근에 등산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 입구
휴양림 배치도
휴양림 매표소
붓꽃
휴양림 안내간판
송암정
용수골 버스정류소
오늘 산행에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강원도까지 와서 3시간 산행은 좀 짧은 편이지만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이 정도의 가벼운 산행이 그냥 좋습니다. 오늘 이름이 알려진 5개의 산을 답사했지만 매봉산과 큰바람골산은 산의 위치와 지형상 독립된 산으로 보기 어려워 3개만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저고리봉과 어깨봉의 유래를 알 수 없음도 매우 아쉽습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5년 5월 21일 (목)
▲ 등산 코스 : 안중천 버스정류소-도로-백운산(천지봉)-매봉산-쉼터-어깨봉-큰바람골산(왕복)-저고리봉
-백운산자연휴양림 매표소-송암정(용수골 버스정류소)
▲ 산행 거리 : 6.9km (GPS 측정)
▲ 산행 시간 : 2시간 50분
▲ 등산 안내 : 강송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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