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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은 조선 왕조 5대 궁궐의 하나로
가장 으뜸인 법궁(法宮, 정궁)으로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습니다.


"경복(景福)"이라는 말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이후 그 임무를 창덕궁에 넘겨주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중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는 등 많은 전각들이 훼손되었으나,
1990년대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후 복원사업을 벌인 덕분에
복원작업은 현재 부분 완료된 상태입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 굴뚝 등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대지 주위를 담장으로 둘러싸고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남문인 광화문(光化門),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등 4개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경복궁을 방문할 경우 대부분은 근정전과 경회루,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향원정을 답사합니다.
그렇지만 경복궁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고
사극에 등장하는 친숙한 전각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정무를 보던 사정전,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떠오르는 해로 비유되는 세자궁인 동궁(자선당),
대왕대비의 처소인 자경전,
궁중 음식을 만들었던 소주방,
명성왕후가 시해된 건청궁,
왕과 왕비의 시신을 안치한 태원전 등은 필수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체답사를 할 경우 쉽지는 않겠지만
개별적인 방문이라면 차근차근 경복궁의 여러 전각들을 둘러보면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하기 바랍니다.

 

 

[1]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은 경복궁에서
문무백관의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정전이자 법전(法殿)입니다.

 

근정전은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입니다.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등
 조선 전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하였습니다.

근정전 앞의 품계석

 

 

 

 

 

근정전 뒤에는 왕의 편전이 있습니다.
편전의 중심건물은 사정전(思政殿, 보물제1759호)으로
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살피던 전당입니다.
사정전은 "생각하며 정사를 돌본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 근정전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4

 

 

 

 

[2] 조선시대 큰 연회장인 경회루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에 있는 누각(국보 제224호)으로
조선 시대에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대연회를 베풀던 곳입니다.


지금의 경회루는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1867년 새로 지은 건물로,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가 되는 네모 난 인공연못 안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입니다. 

 

원래 경회루는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세운 작은 누각이었는데,
태종 12년(1412년) 연못을 넓히고 건물도 다시 크게 완성하였습니다.

태종은 창덕궁에서 정무를 보며 경복궁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 장소를 마련하고자 이 누각을 지었습니다.

 

 

 

 


☞ 경회루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3

 

 

 

[3] 사계절 사진촬영명소인 향원정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향원지)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어 지은 정자입니다.

 

향원정(香遠亭)은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의미이며,
향원지를 건너는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입니다.

 

 

 

 

 

☞ 향원정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25

 

 

 

 

[4] 왕과 왕비의 침전으로 용마루가 없는 강녕전과 교태전

 

근정전과 편전(사정전, 천추전, 만춘전)이 외전(外殿)이라면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내전(內殿)입니다.

강녕전(康寧殿)은 편전인 사정전 뒤쪽 향오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전각입니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의 오복에서
가운데 해당하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강녕"의 의미를 담아 이름 붙인 전각입니다.

 

 

 

교태전(交泰殿)은 왕비의 침전인 중궁전으로,
강녕전에서 양의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정면 9칸 규모의 건물입니다.
교태란 양과 음이 교류한다는 뜻으로 주역에 있는 괘 이름입니다.

 

 

 

 

교태전은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궁궐 내에서 유일하게
용마루(지붕에서 가로로 하늘과 맞닿는 부분)가 없는 전각인데,
이는 "왕은 용을 의미하므로 왕이 자는 곳에는 용을 둘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마리의 용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라는 설이 있지만 임금이 정무를 보는 근정전 및 사정전 등에도
용마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한 이유는 아닌 듯 보여집니다.

 

반면, 용이 왕과 왕비사이를 가로막아 수태에 방해가 될까봐
용마루를 없앴다는 설도 있다고 하는군요.  

  


☞ 강녕전과 교태전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5

 

 

 


[5]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인 자선당과 비현각(동궁, 세자궁) 

 

조선시대 왕세자는 떠오르는 해와 같아서
그의 처소(거처)를 동쪽에 세워 동궁이라 칭했습니다.


사정전의 동쪽에 자리잡은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동궁은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춘방)과
경호와 의전임무를 수행하던 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자선당과 비현각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6

 

 

 


[6] 대왕대비가 거처하던 자경전

 

대왕대비의 처소인 자경전(慈慶殿, 보물 809호)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동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왕이 세상을 떠나면 교태전에 있던 왕비는 대비로 높여져
정침인 교태전을 새로 중전이 된 왕비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때 대비가 교태전에서 옮겨와 주로 머물던 곳이 자경전입니다. 

 

"자경(慈慶)"이란 왕이 어머니와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자경전 후정 담의 중앙부에는
자경전 십장생(十長生) 굴뚝(보물제810호)이 있는데,
이 굴뚝은 담보다 한단 앞으로 나와
장대석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전돌로 쌓았습니다.

 

 

 

☞ 자경전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7

 

 

 

 


[7] 장금이의 활동무대였던 궁궐주방 소주방

 

소주방은 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음식을 장만하던 부엌으로
1395년 경복궁 창건 이후 궐내 제반시설을 정비하면서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 경복궁 재건 시 다시 지어졌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2차 복원사업을 통해
경복궁 소주방은 약 100년 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재현되었으며
2015년 5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수라간 궁녀로 들어간
서장금(이영애 분)의 활동무대가 바로 소주방이었지요.  

 

소주방은 외소주방과 내소주방 및 생물방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외소주방>은 왕(왕비)의 탄신일, 명절(정월, 단오, 추석, 동지),
경사(궁 밖 종친들의 생일과 왕족의 가례와 관례),
연회 등 잔치음식을 장만하던 곳입니다.
외소주방에는 난지당(蘭芝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네요. 

외소주방

 

 

외소주방의 서쪽에는 <내소주방>이 있는데,
이는 왕과 왕비의 수라를 장만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이른 아침 수라, 낮것상이라고 부르는 점심,
저녁 수라 등 궁궐의 일상식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조반과 점심 등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소주방

 

 

 

외소주방 뒤쪽에는 <생물방>이 있습니다.
생물방(生物房)은 임금의 별식인 다식, 죽, 전 등을 준비하던 곳으로
건물에는 복회당(福會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군요.
다른 곳과는 달리 응접실과 부엌을 재현해둔 게 이채롭습니다.

 

 

 

☞ 소주방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38

 

 

 

 


[8]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고종은 1873년(고종10년)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세웠는데요.


건청궁은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坤寧閤, 명성왕후의 거처),
 왕의 처소인 장안당(長安堂, 고종의 거처),
서재인 관문각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공사관직원, 일본군, 일본자객들이 건청궁에 난입해
 곤녕합의 옥호루(玉壺樓)에서 명성왕후를 찔러 죽이고
 그녀의 시신마저 청휘문을 통해 바로 옆에 있는
"녹산(鹿山)"에서 불에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

 

 

 

 

☞ 건청궁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932

 

 

 

 

[9] 왕과 왕비의 관을 안치한 태원전

 

경복궁 태원전은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건립한 건축물로 주로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복도를 통해 주변의 건물과 연결되었습니다.

 

빈전은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곳입니다.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에 시신이 든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魂殿)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기간을 채운 후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됩니다.

 

태원전은 고종 5년(1868년) 건립된 후 태조 이성계의 어진 등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眞殿)으로 시작했습니다.

1890년(고종 27) 익종(翼宗)의 비인 대왕대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
조씨(趙氏)의 국상(國喪)에 빈전으로 사용되었고,
1895년 명성왕후(明成皇后, 1851∼1895) 민씨(閔氏)가 시해되자
그의 빈전으로도 쓰였습니다.
그 뒤에 헐렸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고 2009년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었습니다.

 

 

 

 

 

 

☞ 태원전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다음 글을 클릭해 주세요!
http://leeesann.tistory.com/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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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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