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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조각상과 박달재 노래비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해발 504m)로 구학산(971m)과 시랑산(691m)이 맞닿은 곳에 있으며,
원서천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에 솟은 천등산(807m)과 마주 보고 있어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고려고종 4년( 1217)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박달산(825m)은 충북 괴산에 있으므로
 이곳 박달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박달재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가 전해옵니다.
하나는 일대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다른 하나는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후자(後者)에 관해서는 1948년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국민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가 발표되어 지금까지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습니다.


이 노랫말에 나오는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에서
천둥산은 실제 천등산입니다.
최근 개통된 평택-제천 고속도로에도 천등산 휴게소가 있지요. 

 

박달재 고갯마루에는 박달재 노래비와 박달도령이
금봉낭자를 껴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신 님아
둘아 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그럼 이제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옛날 경상도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한 후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다.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박달은 고갯마루 방향을 바라보니 꿈에 그리던 금봉이가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박달은 힘껏 고개 쪽으로 달려가 금봉이를 겨우 끌어안았으나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박달은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는데 그 후로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한다.』

 

 

이 주변으로 박달재 목각공원이 있는데
철과 화강암으로 만든 현대적인 조각작품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박달재 노래비 옆에는 "고려 명장 김취려 장군 대첩비"가 있습니다.
김취려 장군(1172-1234)은 고려 후기 제천에서
거란병을 크게 무찔러 격퇴한 무신입니다.  

 

 

 

 

 

 

 

박달재 휴게소에는 다양한 목각조각작품이 있는데요.
나무 장승형식으로 제작된 조각작품들은
여성의 유방과 남성의 심벌(symbol)을
과감하게 드러낼 정도로 성의 표현이 대담합니다.

 

 

 

 

 

 

 

 

 

 

 

 

 

 

 

 

 

인근에는 박달과 금봉의 가묘가 있지만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휴게소로 들어서면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항상 들려오는 곳,
여기는 충북 제천의 박달재입니다. 

박달재는 제천10경 중 제2경에 오를 정도로 

옛이야기와 풍경이 가득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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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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