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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소재 장릉(章陵, 사적 제202호)은
조선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1578-626) 구 씨를 모신 능입니다.

 

원종은 제14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사망할 때
정원군인 군(君)의 신분이었으므로 양주 곡촌리(현재 남양주시 금곡동)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고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왕(인조)이 되자 이미 고인이 된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높여졌고,
10년 후 원종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이후 원종의 무덤은 현재의 자리인 김포시로 옮겨지면서 장릉이 되었습니다.

 

사실 장릉은 김포 장릉 이외에도 두 기(基)가 더 있습니다.
영월 장릉(莊陵)은 제6대 단종의 능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에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릉입니다.


파주 장릉(長陵)은 제16대 인조(1595-1649)와
인열왕후(1594-1635) 한 씨의 무덤입니다.


이와 같이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은 동일한 장릉이
세 곳 있음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원종은 비록 현직의 왕은 아니었지만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었기에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 다른 조선왕릉과 마찬가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입니다.


매표소를 지나면 장릉역사문화관이 있는데
조선왕릉과 장릉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능침으로 가는 길은 마치 수목원 같습니다.
녹음이 짙은 계절에 그윽한 숲 속을 걷는 것은 왕릉을 답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속세의 번잡함을 잊고 힐링(healing)을 하는 기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매우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제법 보입니다.

 

 

붓꽃

 

 

 

 

먼저 재실 쪽으로 갑니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해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준비를 하던 공간입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반듯하고 단아한 한옥 건물이
당시의 위상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마침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나왔더군요.

 

 

 

 

 

 

 

 

 

 

 

 

 

재실을 나와 연못(연지)을 돌아가면 장릉입구인 홍살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붉은 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살을 박아 놓은 것입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에는 박석(薄石)을 깔아 놓았는데
좌측의 약간 높은 길은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향로(다른 왕릉에서는 신도라고 함)이고,
우측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다른 왕릉은 어도라고 함)입니다. 

 향로(신도)와 어로(어도)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집으로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십니다.

 

 

 

 


 

 

 

정자각 우측의 비각은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입니다.
비각 옆에는 인헌왕후의 무덤이었던
육경원 비석의 받침돌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정자각 방향에서 능침공간으로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거리가 다소 멀지만 쌍봉으로 조성되어 있군요.
능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살문을 나와 능의 좌측으로 들어가면 소나무 군락지가 있고
저수지를 연결하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김포 장릉은 수목원 같은 분위기 속에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는 뜻깊은 역사문화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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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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