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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장성읍과 담양군 대전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바위산인 불태산(720m)산행을 마치고 코스모스 피어 있는 마을 옆 수령 약 600년이 가까워 오는 보호수 느티나무 아래로 하산했다.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고 보니 시간이 남는다. 하여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할머니 한 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서울서 산행을 왔다고 대답한다. 할머니는 이웃한 기와집을 가리키며 저런 곳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글쓴이도 사실 오래된 기와지붕이 보여 이쪽으로 나온 것이다. 문이 열려 있는지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큰 주차장 앞에 있는 대문으로 가니 자물통이 잠겨있다. 할머니가 구경하라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으면 어찌 본단 말인가.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거기에 솟을대문이 있는 정문이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다. 



대문 앞의 안내문을 보니 고산서원이다.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옛 성현을 제사하고 제자들을 교육하던 사설기관이다. 고산서원은 조선조 성리학 6대가(율곡 이이, 퇴계 이황, 서경덕, 임성주, 이진상, 기정진)의 한 사람인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한 곳으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인 후학들이 1924년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소재지는 전남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257번지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63호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경내가 매우 넓다. 고산서원(高山書院)이란 현판이 붙은 중심건물은 풍채가 당당하다.



우측에는 거경제(居敬齋)가 있고, 좌측에는 집의제(集義齋) 및 장서각(藏書閣)이 있다.

거경제

집의제

장서각


안쪽 담장 가까이에 두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다. 인기척을 내니 깜짝 놀란다. 그만큼 방문객이 적다는 반증이다. 왼쪽 붉은 색을 칠한 대문을 가리키며 들어가 볼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되묻는다. 서울서 등산 왔다가 들렀다고 하니 이곳은 사당이므로 들어가도 볼 것이 없다고 한다.    
                        비석 뒤의 인부   
        

닫힌 사당



고산서원은 노사 기정진을 주향으로 하고 문인 조성가(趙性家), 이최선(李最善), 김록휴(金錄休), 조의곤(曺毅坤), 정재규(鄭載圭), 기우만(奇宇萬)을 배향한 서원이다. 따라서 안에는 이들 7명의 위패를 모셔 놓았을 것이다.

비교적 관리는 잘 되어 있는 듯 하고 또 입구에 큰 주차장이 있는 것으로 봐서 방문객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간 날은 평일 이어서 그런지 경내와 주변은 적막감이 감돈다.    
 

 

   기정진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행주이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어려서 장성으로 이거하여 살았다. 10세 때에 이미 경서와 사서에 통달하였으며 1831년(순조31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강능참봉에서 1876년(고종13년) 호조참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나라일에 관심이 많아 '임술의책'과 '병인소', '위정척사소'등을 올려 국정을 바로잡도록 하였다.

   학문은 성리학에 밝아 기(氣)보다 이(理)를 중시하였으며 이기일체관을 바탕으로 유리론(唯理論)을 제기하는데까지 나아갔다. 즉 기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기의 운동 자체도 이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일분수설(理一分殊設)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조선 성리학의 6대가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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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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