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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소재 회룡사(回龍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신라 신문왕 1년(681) 의상대사가 창건해 법성사라고 했고,
신라 경순왕 10년(936) 동진국사(洞眞國師)가 중창하였으며,
고려 문종 24년(1070)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삼창하였다습니다.

 

회룡사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 우왕 10년(1384) 무학(無學)이 중창을 한 뒤이며,
여기에는 이성계(李成桂)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집니다.


1384년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이 절에 와서 3년 동안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하였는데, 이때 태조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선 가까이에 있는 무학굴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하였는데, 후일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무학을 찾아와서 절 이름을 회룡사라 하였답니다.

 

한편으로는 조선 태종 3년(1403) 태조가 끈질긴
함흥차사(咸興差使)들의 노력에 의하여 노여움을 풀고
귀경한 뒤 이곳 무학을 찾아왔으므로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하여 회룡사라 하였다고도 합니다.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회룡골의 회룡폭포를 지나면 사패능선으로 가는 길목에 회룡사가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기와담장이 매우 친근하게 보입니다.
절 입구에는 회룡사 연혁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군요.

회룡사 입구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기와담장

 

 회룡사 연혁

 

 

 

 

 

설화당을 지나면 좌측에는 범종각이 있고
사찰의 주요전각은 우측에 있습니다.


범종각 1층에는 석조(경기도 문화재 자료 117호)가 있는데,
석조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보관하는 수조로
이 석조는 조선시대의 석조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설화당

 

범종각

 

회룡사 석조

 

 석조 안내문

 

 능소화

 

 

 

 

 

 

 

안쪽으로 눈을 돌리면 대웅전과 극락보전이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인데,
법당 내부가 매우 화려합니다.

 대웅전과 극락보전

 

 극락보전

 

 극락보전 내부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전각으로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합니다.

 

 

대웅전 내부

 

 

 대웅전에서 바라본 경내의 모습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이에는 삼성각이 있는데
삼성각은 산신과 독성과 칠성을 모신 전각입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산악 숭배 관념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찍부터 신성한 곳으로 믿어지는 산에 제사를 드리고,
산에는 산신(山神)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산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인
 호랑이와 산신을 동일한 존재로 묘사합니다.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인상의 산신이
 비스듬히 선 소나무를 배경으로 인자한 표정으로
엎드린 호랑이를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를 증명합니다.

 

 

 삼성각 내부

 

 삼성각에서 바라본 경내의 모습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상을 모신 전각으로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목숨을 연장시켜주며,
일체의 재앙을 소멸시켜 주는 부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약사전의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회룡사는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고
또 수조에는 시원한 생명수가 철철 넘치고 있어
등산객들의 물 보충을 위해서라도 사패산을 오가는
길손들은 꼭 들리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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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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