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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의신계곡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의 벽소령을 넘어 함양군 마천면으로 넘어가던 옛길이 있었습니다. 이 길은 옛 보부상들이 하동이나 광양 등 남해안의 해산물을 함양 등 내륙지방으로 운송하던 길입니다. 이 중에서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4.2km 구간을 서산대사길이라고 부릅니다. 서산대사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덕평봉 중턱)에서 1534년 출가하였고 1540년 삭발득도 해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얻었는데 이 길이 서산대사가 출가하기 위해 원통암으로 걷던 바로 그 길입니다. 

 

필자는 서산대사길을 걸은 후 원통암을 찾았습니다. 원통암으로 가려면 의신마을의 벽소령 산장에서 이정표를 보고 북쪽으로 진입하면 되는데, 여기서 원통암까지의 거리는 이정표 상으로 900m에 불과하지만 오르막 일변도여서 가는 길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하얀 집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진입해 사방공사가 잘 되어 있는 계곡을 두 번 건너면 길은 외길입니다. 원통암은 지리산 덕평봉 아래 해발고도 700m에 자라잡고 있어 비록 숲 속 길이라고는 하지만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는 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의신마을 장승

 

 벽소령 산장의 원통암 이정표

 

 만개한 능소화

 

언덕 위의 하얀 집

 

 하얀 집에서 우측으로 진입  

 

 사방공사가 잘 된 계곡

 

 가파른 오름길

 

 

 

 

드디어 서산선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원통암에 도착합니다. 원통암 입구(이정표 있는 곳)에서 900m를 오르는데 무려 50분이나 소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거리가 900m는 넘는 듯 하더군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지리산의 여러 사찰(암자)중에서 가장 청정하고 고요한 암자라는 주장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경내에서 지나온 화개천 골짜기를 바라보니 마치 여기가 신선이 사는 곳인 듯 속세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원통암 서산선문

 

 

 

 

 경내에서 바라본 화개천 계곡

 

 

 

 

 

서산대사(1520-1604)는 조선 중기의 고승·승장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으며,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삼교통합론의 기원을 이룬 분입니다. 원통암 현판이 붙은 전각 안에는 휴휴선림이라는 다른 현판이 있고 그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네요. 나란히 있는 청허당에는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마침 홀로 계신 스님에게 서산대사님의 영정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기꺼이 문을 열어 주시네요. 뒤편에는 산신각이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청허당 옆에는 아담한 장독대가 있고 그 옆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물 한바가지를 마셔보지만 워낙 기온이 높아서인지 산 중턱 약수터의 샘물도 미지근합니다.  

 

 

 

 청허당

 

 

 

 청허당의 사명대사 영정

 

 

 약수터

 

 

 

 산신각에서 바라본 화개천계곡

 

 

 

 


원통암은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원통암은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지리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천혜의 명당터로 알려져 왔으며 구한말 화재로 인해 폐사된 것을 1997∼2011기간 중 전각을 복원하여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신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산이 크고 골이 깊은 지리산에는 수많은 사찰(암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원통암은 가장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삼정산(1,267m)이 있는 곳에 칠암자(도솔암, 영원사, 상주무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가 있지만 칠암자 순례길이 생긴 이후 찾는 사람이 무척 많아져 고즈넉함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 화개천의 서산대사길 및 이웃한 대성골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도 오르기 힘든 원통암을 찾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해 원통암에 가면 속세를 떠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서산대사가 생존한 시기에는 이곳은 스님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첩첩산중이었을 테니 그가 이곳을 출가지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테지요.(2018.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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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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