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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로 지정된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聖興山) 자락의 대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대조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데 부여읍지(扶餘邑誌)』에 의하면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와서

백제불교의 방향을 달리한 겸익(謙益)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사적기를 참작하여 기록한 현판에 하면 대조사는

527년 담혜(曇慧)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창건주에 대한 설은 다르지만 대조사는 6세기 초에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그 후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陳田長老)가 중창하였고,

20세기에는 명부전, 종각, 미륵전을 각각 신축하였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용화보전, 명부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특히 대웅전 뒤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제217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한 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었으므로

이 절을 대조사(大鳥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 범종각이 있고, 정면에는 원통보전이 있습니다.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인데, 내부가 상당히 화려하군요.

 

내부의 불상인 목조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으며,

무릎이 높고 넓어 안정적인 비례를 보여

17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범종각

 

 

 원통보전

 

 

 

 원통보전 내부의 목조보살좌상  

 

 

 

 

 

원통보전 앞에는 삼층석탑(충남 문화재자료 제90호)이 있는데

이는 원래 옥개석(屋蓋石)만 있었으나 1975년 몸체돌(옥신,屋身)이 발견되어

복원하였으며,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원통보전의 좌측은 약수터인 불유정(佛乳井)이며,

우측은 종무소인 향적당(香積堂)입니다.

 약수터 불유정

 

 

 종무소 향적당

 

 

 

 

 

보살입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용화보전이 있는데

내부에는 불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바깥에 자리 잡은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 때문인데

그 방향으로 유리벽만 보일뿐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에 불상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군요.

 용화보전

 

 

 불상이 없는 용화보전 내부

 

 

 유리벽으로 된 용화보전의 뒷면

 

 

 

 

이제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만날 차례입니다.

이 입상은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입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이 거대한 미륵불은 조각기법이 세련되지 않으며

신체의 비례가 어울리지 않은 점 등 논산 관촉사(灌燭寺)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보물 218)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합니다.

 

다만 이 입상은 하나의 돌을 다듬어 조각하였다는 점에서

관촉사 미륵보살상과 다르다고 하네요.

 

 

 

 

 원통보전 뒤로 보이는 석조미륵보살입상

 

 

 용화보전과 석조미륵보살입상

 

 

 

 

성흥산 대조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매우 잘 알려진 천년고찰이며

인접한 성흥산 고갯마루에는 부여 10경에 이름을 올린 성흥산 사랑나무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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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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