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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청사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의 유래 


경기도 용인지방은 여러모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고장입니다.
전국의 행정구역 중에서 골프장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고,
시(市)의 청사가 가장 크고 호화롭다고 합니다.
또한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고 하여
죽어서 반드시 묻혀야할 명당자리라고도 합니다.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간다"는 말은
오늘날 실제로 잘 못 사용되고 있는 데, 그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충북 진천과 경기도 용인에 살던 나이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한 날 한 시에 죽었다.
저승에 갔더니 저승사자가 용인사람에게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왔다며,
그를 이승으로 돌려보냈다. 그가 용인 집에 와보니 이미 자기 시신은 매장된 뒤였다.

그래서 진천 사람 집에 가보니 그는 아직 매장되기 전이었다.
혼령은 그 시신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진천사람 몸에 들어가 살아났다.
실제로 용인사람인지라 행동거지가 원래 진천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식구들도 모두 이상히 여겨 태도가 달랐다.
그가 자기 집인 용인에 가니 아무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물론 식구로도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는 신세가 하도 기가 막혀 고을 원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원은 "자네는 본래 용인사람으로 진천에서 다시 살아났으니
살아서는 진천사람으로 행세하고, 죽게되면 용인사람으로 돌아가라."고 판시해 주었다.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한 사람이 환생해 겪게 된 삶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흔히 살기는 진천에 살고, 무덤은 용인에 쓰라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본래의 어원과는 달리 풍수설과 어울려 특수한 의미로 바뀐 것이다.≫
(참고자료 : 월간 공무원연금, 2009년 5월호)    


참 재미있는 환생설화입니다.
원래 사연이 이러한데도 용인이 죽어서 묻힐 명당자리라는 인식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조상의 묘를 쓰려고 노력했으며,
많은 땅이 묘지로 이용되었을까요?

풍수 덕분에 대망을 이룬 것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 인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대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그는 고향인 전남 신안의 선친 묘소 등을
1995년에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습니다.
그 덕분인지 모르나 그는 2년 뒤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조상의 묘를 소위 명당으로 이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대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인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선비가 용인을 지나가다가 산자락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를 읽었습니다.

"심조불산, 수군인용"

무언가 의미심장한 뜻이 포함된 한자숙어 같아 유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불을 조심하라고 용인군수가 걸어둔 경고문을 거꾸로 읽은 것입니다.
그 당시 군청에서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도록 현수막을 만들었는데,
이 선비는 좌에서 우로 읽은 것입니다. "심조불산, 수군인용"은
"산불조심 용인군수"를 거꾸로 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던 앞으로는 사후에 굳이 용인에 가서 묻히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일반화추세에  있는 화장을 하여 그냥 한줌의 재로 돌아가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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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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