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1,157m)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동양최대인 용문사 은행나무로 널리 알려진 명산입니다. 경기도에서는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용문산 정상은 지난 40여년 간 그 일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폐쇄되어 왔으나 지난해 4/4분기 일반인에게 개방된 지역이라 최근 인기가 높은 산입니다.
용문산의 남남서쪽 줄기인 양평의 너른 벌판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백운봉(940m)은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산입니다.
2008년 2월 6일, 설날 연휴 첫날을 맞이하여 용문산과 백운봉 종주 산행을 떠납니다. 등산버스(S산악회 주관)가 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다가 양평을 지나 북쪽으로 꼬부라져 산행들머리인 양평읍 백안리 새수골에 도착합니다. "양평 대영학원"을 알리는 거대한 표석이 서 있습니다(09:45).
약수사라는 조그만 암자를 지나 등산로로 접어들자 골짜기 양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제법 그럴 듯 합니다. 등산로 안내도를 보니 새수골에서 백운봉까지는 3.2km입니다. 계곡에는 이따금씩 흐르는 물이 얼어붙어 빙벽을 형성하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잠시동안 부드럽게 이어지던 등산로가 어느 순간 본격적인 오르막으로 변합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42분만에 이름도 좋은 "백년약수터"에 도착합니다(10:47). 시원한 약수 한잔으로 목을 축입니다.
가야할 백운봉
약수터를 뒤로하고 가파른 길을 올라 능선에 도달하니 가야할 백운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양지바른 남쪽사면이라서 그런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눈(雪)은 응달에만 조금 보일 뿐입니다. 부드러운 능선을 지나 정상으로 접근하는 비탈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이를 치고 오르니 드디어 백운봉(白雲峰, 940m)입니다(11:04).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20분이 지났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하늘 아래 백운봉 표석 뒤로 보이는 용문산의 모습 통일암 용문산으로 이어진 능선
정상에는 한글로 된 큰 정상표석 옆에 "통일암(統一岩)"이 커다란 화강암의 받침대위에 놓여 있습니다. 받침대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씌어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위 흙과 돌은 6천만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옮겨 이곳 백운봉에 세우다."
주변에 약간의 연무(煙霧)가 끼어 있기는 하지만 조망은 상당히 좋습니다. 북쪽으로는 오늘 가야할 용문산이 각종 시설물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고, 남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능선 뒤로 삿갓봉(473m)으로 이어진 능선이 보이며, 저 멀리 남한강 줄기도 희미하게 조망됩니다.
남쪽의 조망 남남서쪽 저멀리 보이는 남한강 줄기 백운봉 북벽 내리믹길(실제로는 매우 가파름)
산행들머리에서부터 백운봉까지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안전해 콧노래를 부를 지경이었는데, 백운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급경사를 내려서는 길은 한 마디로 죽음의 길입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면이 빙판으로 얼어 있는데, 다행히도 로프가 걸려 있고 또 아이젠을 착용하여 비교적 안전하게 내려옵니다.
뒤돌아본 지나온 백운봉 하산길 가야할 용문산 능선
오를 때는 계단을 이용하여 쉽게 올라 백운봉의 정상부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하였지만 정상을 내려오면서 경험으로 이를 인식합니다. 힘든 구간을 무사히 내려와 안부를 거쳐 다시 오르며 뒤돌아보니 뾰족한 백운봉의 모습이 한 눈에 조망됩니다.
함왕산성터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길에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나타납니다(12:00). 바로 함왕산성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한번 보기로 하겠습니다.
장군봉 표석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호족세력인 함규(咸規) 장군은 사나사 남쪽 맞은편 함왕성의 성주였다. 당시 그는 양평 지역에서 이름을 떨쳤던 호족세력 견휜과 궁예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경계지역 성주였는데, 실리와 때를 기다려 왕건에게 귀의한다. 바로 이들 함씨 세력이 웅거하던 곳이 함공성(咸公城), 또는 함씨대왕성(咸氏大王城)인데, 지금은 정문과 그 좌우로 이어지는 석축만 남아 있다.」
함왕산성을 지나 지루한 능선을 타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작은 봉우리입니다. 북으로는 용문산, 남으로는 백운봉이라는 이정표만 서 있을 뿐 현 위치에 대한 안내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함왕봉(947m)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용문산 장군봉(1,065m)입니다(13:00).
용문산 정상 표석
장군봉에서 북쪽 길을 따라 조금 가니 각종 군사시설물이 설치된 용문산의 정상(1,157m)이 매우 가까이 보이지만 둥근 시설물이 위치한 봉우리로는 접근이 금지되어 오른쪽으로 내려섭니다. 등산로는 9부 능선을 따라 수평으로 이어집니다. 왼쪽 위로는 정상부가 지나가는데 길목에는 바위덩어리가 흘러내린 너덜지대가 두 번이나 나타납니다.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철탑 밑 삼거리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이 쉬고 있습니다(13:42). 이곳에서 그동안 오르지 못했던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정상 밑에는 팔각정도 보이는 데, 마침 군부대에서 기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등산객을 바라봅니다. 철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정상입니다(13:50). 바로 눈앞에는 KT(한국통신)의 중계탑이 우람하게 서 있습니다.
KT의 통신시설물 시설물 사이로 바라본 서쪽 조망 북동쪽으로 위치한 도일봉과 중원산
무엇보다도 커다란 정상표석이 반겨주는 가운데 주변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합니다. 동쪽으로는 도일봉(841m)과 중원산(800)이, 서쪽으로는 유명산(862m)과 청계산(658m)이 선명합니다.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군 당국에서 이렇게 조망이 좋은 장소를 40년 만에 개방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북쪽 조망 동쪽 조망(용문사 방면) 암봉에서 바라본 조망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용문사방면으로 하산하기 위해 직진합니다. 경사가 엄청나게 가파릅니다. 미끄러운 눈길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난이도가 제법 높은 급경사 내리막이 몇 차례 이어지고 또 바위사면의 허리를 돌아가는 길도 있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두 차례나 직벽의 로프를 타고 내려와야 하고 또 철 난간이 설치된 길을 엉금엉금 기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죽음의 코스입니다.
뒤돌아본 직벽의 하산길 뒤돌아본 바위틈(중간)의 하산길 용문사 대웅전
용문산을 소개한 글 중에는 "용문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또 동양최대의 은행나무가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명산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산행코스를 어떻게 설정해야 이렇게 무리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에서 출발한지 약 1시간 45분만에 용문사에 도착합니다(15:40). 하산 길인데도 불구하고 약 3km 거리를 걷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용문사(龍門寺)는 서기 913년(신라 신덕왕 2년)에 대경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며, 용문사 뜰 아래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는 동양최대의 규모로 수령이 무려 천년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데, 높이 62m, 밑둥의 둘레 14m에 이르는 거목입니다.
용문사 은행나무 전통 찻집
사찰입구에 위치한 전통찻집의 마루 밑에는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잘라서 가지런하게 쌓아둔 것이 고향의 향수를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나 하산길이 바빠 찻집에 들어가 느긋하게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용문사 일주문이 가까워오자 용문산 정상개방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일주문까지는 음식점 등 보기 싫은 건축물이 없어 분위기가 조용한 게 운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고 나면 어린이놀이서설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당국에서 이곳을 용문산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위락시설설치를 허용한 것 같습니다. 용문산 정상개방 현수막
용문사 일주문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용문산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합니다(16:00). 오늘 산행에 6시간 15분이 소요되었습니다(산행거리 : 약12km). 산행코스는 백안리새수골∼백년약수∼백운봉∼함왕산성∼함왕봉∼용문산장군봉∼정상삼거리이정표∼용문산정상∼암릉∼용문사∼주차장입니다.
용문산 등산로 안내도
산행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백운봉 북쪽내리막 및 용문산에서 하산하는 암릉길 등 매우 까다로운 구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겨울철 백운봉과 용문산을 종주하는 산행의 경우 단순히 거리계산만 하고 쉽게 생각해서는 큰코다치기 딱 알맞은 그런 산입니다. 평소 산행을 마치고 나면 다리가 뻐근함을 잘 모르는데, 이번은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험한 코스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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