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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이외수의 작품에 심취하게 된 것은 지난해 출간된 <하악하악>을 읽고 난 후이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기인작가라고 불리던 그 명성 그대로 촌철살인의 해학을 담고있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 나는 아들에게 대학도서관에 가서 이외수의 책을 여러 권 빌려 오라고 해서 연거푸 읽은 적이 있다. 읽은 책은 <겨울나기> <들개>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등이다. 그 중에서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라는 책은 독후감을 적었다.

며칠 전 아들녀석이 나에게 두 권의 책을 내밀었다. 모두 이외수가 지은 책이다. 전혀 기대를 하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알아서 책을 빌려오다니 참 기특하다. 이 중의 한 권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바보바보>(해냄출판사, 2004)이다. 그런데 이 책도 읽기가 매우 쉬운 수필집이다. 책의 구성과 편집이 <하악하악>과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와 비슷하여 술술 읽힌다. 중간 중간에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서명으로 보아서는 작가가 그린 것 같지만 책의 어디에도 그린이의 이름을 찾지 못하겠다. 



이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보기, 동물보기, 식물보기, 인간보기, 빈손보기가 그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그가 말한 부분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가 빠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p. 34)

쇠고기나 닭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이 개고기나 말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에 대해서 필요이상 과민반응을 나타내 보인다는 사실은 엄밀하게 따지면 도토리 키 재보기, 또는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나무라기나 다름이 없다. 음식문화는 오랜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환경과 정서에 따라 그 정통성을 드러내 보인다.(p. 56)

자비롭게도 하나님은 스물네시간을 쓰는 방식만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맡겨 두셨습니다. 스물네시간을 튀겨 먹든 볶아 먹든 네 마음대로 해도 되느니라. 하지만 개떡 같이 쓰면 개떡  같은 일이 생기고, 꿀떡 같이 쓰면 꿀떡 같은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p. 74)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옵니다. 그러나 지나간 비디오 테이프는 되감을 수 있어도 지나간 시간의 테이프는 되감을 수 없습니다. 그대의 오늘은 비록 허망하였더라도 그대의 내일은 진정 기쁨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p. 76)

오늘날 도처에서 남발되는 사랑은 자갈밭에 굴러다니는 유리컵처럼 위태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깨져버릴 확률이 높다. 입대와 동시에 깨져버린 사랑도 있고, 실직과 동시에 깨져 버린 사랑도 있다. 가문이 신통치 않아서 깨져 버린 사랑도 있고, 학벌이 신통치 않아서 깨져 버린 사랑도 있다. 이게 무슨 백설공주 사과 깨물다 어금니 부러지는 소리냐.(pp. 98-100)

한국사람은 정력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어떤 혐오식품이든지 왕성하게 먹어 치우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까마귀를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정력에 좋단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입니다. 마리 당 삼십만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입니다. 돈 벌고 싶으신 분 계시면 까마귀 양식을 한번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p. 103)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남이 음식을 먹을 때 빤히 쳐다보는 놈이 제일 치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남이 먹을 음식에 유독성분을 첨가하는 놈은 그 보다 더 치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p. 104)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난 짝퉁공화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명품이 짝퉁취급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짝퉁이 명품취급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모든 짝퉁은 간사한 기술을 바탕으로 조작되지만 모든 명품은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된다.(p. 121) 


어제 잡은 잉어는 지금 격외선당(이외수의 거주공간/글쓴이 주) 작은 연못에서 활기차게 잘 놀고 있습니다. 이따금 격외선당 연못을 들여다보시면서 매운탕을 들먹거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어찌 가족을 매운탕으로 끓여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언제 저하고 낚시나 한번 가시지요.(p. 156)

이따금 카드 빚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장황하게 열거하면서 내게 거액의 돈을 빌려 달라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적게는 천만 원을 요구하는 사람에서 많게는 오천만 원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돈은 내가 쓸 테니까 글은 니가 쓰라는 뜻일까. 설마 신용카드로 천만 원어치씩이나 내 책을 사주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도 끊임없이 날밤을 세우면서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니다. 가족들에게는 욕심을 줄이는 일로 행복을 대신하라고 충언해 주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보내줄 형편이 못된다.(pp. 162-164)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삼수생 앞에서 사진이 실물보다 잘 나왔다고 자랑삼아 학생증을 보여주는 대학생, 상사가 이혼한 줄 뻔히 알면서도 해외연수 중에 구입한 비아그라를 선물하면서 효능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하직원, 초상집에 문상간 조문객의 호출기에서 간드러지게 들려오는 호출음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자신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저지른 언행이 때로는 타인에게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 수가 있습니다.(p. 175)

세상이 척박할수록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속물들은 세상이 척박해질수록 책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특성을 드러내 보인다.(p. 220)

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달리기를 하면 여자는 위쪽이 흔들리고, 남자는 아래쪽이 흔들린다.(p. 228)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그가 행간에 제시하는 심오한 뜻을 잘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위의 인용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은 무릇 인간답게 살아야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침 지난 5월 중순 2009 서울국제도서전(5. 13-5. 17)이 열렸다. 책으로부터 점점 멀러져 가는 오늘날, 이외수의 <바보바보>는 인간이 바보처럼 살지 말아야 할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음의 양식이다.    

   ☞ 이외수의 <하악하악>과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 대한 독후감은 아래 엮인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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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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