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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제4의 고봉인 용문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용문사(龍門寺). 그 뜰 아래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는 동양최대의 규모로 수령이 무려 천년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해에 16가마니의 은행을 수확하는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데, 높이가 무려 62m, 밑둥의 둘레가 14m에 이르는 거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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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은행나무는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지팡이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이 은행나무를 보면 누구나 그 크기에 놀라는데, 너무 크고 전지가 되지 않아서인지 언뜻 보기에 은행나무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가을이 되어 이 은행나무가 노란색으로 변하면 참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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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은 은행나무(2004. 7. 25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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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사진자료 : 경향신문 2007. 10. 18)




  마의태자의 지팡이라는 전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할까요. 마의태자가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함께 서라벌을 떠나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용문사에 들려 쉬었다가면서 절 앞에 지팡이를 꽂아 놓고 떠난 그 지팡이가 지금의 수령(壽齡) 약 1,200 여 년의 은행나무가 되였다는 것입니다. 그 후 마의태자는 그를 따르던 굶주린 백성 몇 사람 및 공주와 함께 개골산을 헤매다가 망국의 한을 씻을 길 없어 개골산 일만이천봉 중에 태자봉(太子峰)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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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무와 관련된 다른 전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천둥에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 합니다.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한 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 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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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많은 전란으로 용문사는 여러 번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의병의 본거지라고 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던 나무라고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 받기도 한 명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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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은 은행나무(2004. 7. 25 촬영)

 


  용문사일주문을 빠져 나오니 영목(靈木)인 이 은행나무를 기리는 비석과 제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도 호국영목은행수(護國靈木銀杏樹)입니다. 지난해 10월 양평군이 주최가 되고 관련기관 및 단체가 힘을 모아 조성한 것입니다. 용문사는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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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수 비석 및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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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가는 곳) : 서울에서 홍천 가는 6번 국도-양평군 용문에서 좌회전
                       331번 지방도-용문사(2008. 2. 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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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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