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예술
여수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이충무공 자당기거지
pennpenn
2025. 6. 6. 06:55
반응형
전남 여수시 웅천동 소재 여수송현초등학교 서쪽에는 이충무공(1545-1598) 어머니 사시던 곳이 있습니다. 현지 이정표에는 “자당기거지”로 적혀있고 현지 안내문과 카카오지도에는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으로 표기되어 있어 사실 보통사람들은 이곳의 존재를 알기 어렵습니다. 필자도 여수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이를 몰랐는데 함께 동행을 한 Y씨의 소개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공원 동남쪽에서 신월로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오르면 자당기거지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교량을 건너 대각선으로 가면 기와집이 보이는데 이곳은 자당기거지의 화장실입니다. 기와집 뜰로 내려서면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부터 약 5년 동안 사셨던 곳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장군은 충청도 아산에 계시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부인 방씨 포함)을 여기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의 집에 모셨습니다. 아침저녁은 물론 전투에 나갈 때마다 문안을 드리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던 곳으로 예전의 건물은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2015년 신축된 것입니다. 진남관이 있는 전라좌수영이 충(忠)을 실천한 곳이라면 이곳은 효(孝)를 실천한 곳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 여수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자료/현지 안내문).
집의 뜰에는 1990년 세운 이충무공사모비(李忠武公思母碑)가 있는데 비의 받침돌은 거북선이로군요. 이 비석에는 난중일기에 있는 친필을 새긴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월 11일 경인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를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바로 고음천에 도착하였다. 남의길, 윤사행 조카분과 함께 갔다. 어머님께 배알하려하니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큰소리로 부르니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하니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이날 저녁 손수약의 아내가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다.
1월 12일 신묘 맑음. 아침 식사 후 어머님에게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이충무공의 효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 8순이 가까운 어머니를 여수 웅천동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의 집에 모셔다 놓고 수시로 문안을 드렸습니다. 하루는 아침 일찍 배를 타고 어머니 문안을 갔었는데 기운이 많이 떨어진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심지어 장군은 늙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지 않으려 흰머리를 뽑기도 했습니다.
장군은 본영인 전라좌수영을 떠나 행영인 한산도에 있을 때에도 전라좌수영을 오가는 관리에게 부탁해 어머니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또 얼마간 어머님의 안부를 듣지 못할 때에는 무척 애를 태웠고 여수에 올 때는 손수 어머님 진지를 차려드렸습니다. 장군은 백의종군길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슬피 울었습니다.
비석 옆에는 이충무공의 생애를 10가지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안내문이 놓여 있었는데, 열 가지 장면은 전쟁놀이(소년시절), 첫 무과시험에서 낙마(청년시절), 여진족을 무찌름(함경도 초급 무관시절), 거북선 건조(전라 좌수사 시절), 부산해전(1592, 연전연승), 한산도생활(삼도수군통제사 시절), 충무공의 효성, 죄인의 몸, 명량대첩(1597, 통제사 재임명), 노량해전(1598 충무공의 최후)입니다.
비석 옆 작은 대문(협문)을 들어서면 안채인데 현재의 건물은 2015년 신축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며, 사랑채, 관리실 등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좌측 방에는 장군의 모친인 변씨부인이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있고, 그 옆에는 서재 같은 방이 있습니다. 그 우측 방에는 장군이 어머님을 뵙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군요.
안채 우측에는 사랑채가 있는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효심을 배우는 효심체험교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우물이 있고 사랑채 뒤로 가면 1973년 세운 이충무공모부인 초계변씨유적비(李忠武公母夫人 草溪卞氏遺蹟碑)가 있습니다.
이 집은 정대수 장군의 후손인 창원정씨 문중에서 1930년대 개축한 것으로 1972년 이곳에서 당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맷돌, 디딜방아용 돌절구, 솥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2016년 2월 23일 뉴시스 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이곳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못해오다가 민선6기(여수시장)들어 예산을 들여 2014년에서 2015년 두 차례 정비 공사를 실시해 본채와 사랑채 건립, 사주문, 협문, 토석담장, 생활용품 등 전시물을 설치 완공했다고 합니다.
☞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