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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법보사찰)는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순천 송광사(승보사찰)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로 손꼽히는 천년고찰입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세운 절로, 선교 양종의 본산이며, 수다라전(修多羅殿, 수다라장이라고도 함)과 법보전(法寶殿)에 8만 1,258매의 대장경 경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입니다.

"해인"이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말로서 바다에 온갖 사물의 그림자가 인영(印影)처럼 비치듯이 부처님의 지혜바다에는 온갖 만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니, "화엄경"의 진리에 의지해 수행하여 화엄의 사상을 온 누리에 천명하려는 원력으로 이루어진 사찰이므로 "사명(寺名)"을 해인이라 했으며, 화엄 10사찰의 하나입니다.(자료 : 해인사 안내문). 


상점이 모여 있는 해인사휴게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 성보박물관을 지나면 해인사구역입니다. 차도 대신 인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맞이하는 오래된 비석군(碑石群)과 삼측석탑이 해인사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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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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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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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 및 3층석탑


가야산 해인사를 알리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해인총림(海印叢林)으로 이어지는 직선길입니다. 오른쪽에는 수령 1,200여 년이 지났다는 느티나무의 등걸이 남아 있습니다. 이 나무는 신라 애장왕 때(서기 802년) 해인사 창건을 기념하여 심었지만 1945년 수명을 다하여 고사(枯死)되고 현재 등치만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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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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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 1200년의 느티나무(고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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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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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본 정문방향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화려한 연등이 길 양쪽으로 걸려 있어 사찰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 적힌 해탈문을 통과하자 반대편에는 해인대도장(海印大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넓은 마당의 좌측에는 해인범종(범종루)이 있고, 중앙에는 구광루(九光樓)가 우뚝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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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원종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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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대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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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범종


원칙적으로 큰스님들만이 법당에 출입할 수 있었기에 구광루는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는 곳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해인사소유 보물보관장소 및 홍보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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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루와 그 앞마당에서 탑돌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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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 가운데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으며, 4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진 곳에 사람들은 탑돌이를 하며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해인사의 본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입니다. 마당에는 석등과 삼층석탑이 다정하게 일렬로 서 있습니다. 대적광전에는 각 방향마다 다른 이름이 붙어 있는데, 좌측에는 법보단(法寶壇), 뒤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그리고 우측에는 금유계단(金劉戒壇)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측 현판의 이름을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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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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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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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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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유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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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앞마당의 삼층석탑과 석등


이 대적광전 내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大光明殿) 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해인사본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하지 않고 대적광전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은 위쪽 법보전의 비로지나불과 함께 쌍둥이 부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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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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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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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단체방문객


대적광전 옆에는 지난해 11월 낙성식을 올린 대비로전이 있는데, 현재 보수중인지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대비로전 낙성식에서 불상을 지하로 긴급 대피시키는 화재사고에 대비한 첨단장치를 선보였습니다. 대비로전에 모셔진 목조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33년에 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입니다.

대비로전에 불이 나면 자동화재감지장치가 불상 좌대 아래에 설치된 승강기를 즉각 작동시켜 지하 6m 깊이에 30㎝ 두께의 콘크리트로 만들어놓은 대피실로 불상을 이동시키고, 내화벽돌로 만든 이중 방화문이 자동으로 닫혀 열기(熱氣)를 막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자료 : 한겨레신문 2008. 2. 13).     

대적광전 뒤 위에는 유명한 팔만대장경과 이를 보관한 장경각(판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이미 다른 글에서 소개했으므로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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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장경각 입구


해인사 입구에는 오래된 비석이외에도 해인의 경지를 맛봤다는 세 분 성철·혜암·자운 스님의 부도탑이 있습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하지만, 성철스님이 입적한 후 더욱 찾는 사람이 많아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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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부도탑과 사적비
 

성철스님은 1981년 1월 1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정 추대식에 끝까지 참석하지 않는 대신 측근을 시켜 종이 쪽지를 전했는데, 그곳에는 오늘날까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취임 법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성철은 그로부터 1993년 11월 입적하는 날까지 가야산의 해인사를 벗어나지 않았답니다. 

끝으로 도종환 시인의 "해인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면서 주마간산으로 살펴본 해인사 방문을 마무리합니다.(2008. 3. 30).  



해인으로 가는 길
                        도종환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
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십 년 화엄의 마당에서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며 한 세월 벅차고 즐거웠으나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간다
애초에 해인에서 출발하였으니
돌아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다
해인에서 거두어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다
그땐 화엄과 해인이 지척일 것이다
아니 본래 화엄으로 휘몰아치기 직전이 화엄이다
가라앉고 가라앉아 거기 미래의 나까지
바닷물에 다 비친 다음에야 화엄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해인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지친 육신을 바랑 옆에 내려놓고
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다
지금은 바닥이 다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져 있지만
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
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
그 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
 [자료 : 도종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2006, 문학동네)중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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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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