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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개요

찔레꽃은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원산지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야산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은 5월경 가지 끝에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며 무리 져 피는데,
꽃자루에는 잔털이 있다.


 

꽃받침잎·꽃잎은 모두 5장이며, 수술은 많다.
줄기는 약 3~5 미터까지 자라며 일반적으로 가시가 있다.
잎의 길이는 5~10 센티미터 가량이다.
열매는 9월경 붉은 색으로 둥그렇게 익는다.

한국에서는 고도가 높지 않은 지역의 양지 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산과 들에 피는 장미라는 뜻으로
들장미 또는 야장미(野薔薇)라고도 한다.
가지를 많이 만들며 가지가 활처럼 굽어지는 성질이 있어
울타리로도 많이 심고 있다.
양지가 바르면 어떤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 찔레꽃 노래

찔레꽃  작사/작곡/노래  장사익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 찔레꽃 전설

옛날,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해마다 어여쁜 처녀들을 원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조정에서는 <결혼도감>이란 관청을 만들어 강제로 처녀들을 뽑았다.
이렇게 강제로 뽑혀 원나라에 보내지는 처녀를 "공녀"라 불렀다.

어느 산골 마을에 "찔레"와 "달래"라는 두 자매가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 자매는 아버지의 약값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몸보다
두 딸이 공녀로 뽑혀 원나라로 끌려갈 것이 더 걱정이었다.

두 딸은 아버지를 안심시키려고 애썼지만 집에만 숨어 지낼 수는 없었다.
나물도 뜯고 약초도 캐어 살림을 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때면 얼굴에 검댕을 바르고 누더기를 입었다. 

그 날도 얼굴과 몸을 누더기로 가리고 산으로 갔다.
한참 약초를 캐고 있는데 관원들이 나타나
찔레와 달래를 막무가내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자기가 가겠다고 애원하자

관원들도 코끝이 찡해져 언니인 찔레만 끌고 갔다.
자매는 서럽게 이별했다.


 

다른 공녀들과 함께 원나라에 간 찔레는 다행히 좋은 주인을 만났다.
비단 옷에 맛있는 음식, 온갖 패물이 넘치는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찔레는 동생 달래와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밤낮없는 고향 생각에 찔레는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찔레의 향수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었다. 

10년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은 사람을 고려로 보내서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까닭에
고향집으로 심부름을 간 사람은 찔레의 가족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찔레는 낙담한 나머지 혼자서 가족을 찾아 고향길을 떠났다.

하지만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던 오두막은 간 곳이 없고 잡초만 가득 우거져 있었다.
찔레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산을 헤매었다.
그러나 끝내 그리운 동생을 찾지 못하였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외로운 산길에 지쳐 쓰러진 찔레 위로 눈이 덮였다.
봄이 되자 찔레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골짜기마다, 개울가마다 하얀 꽃이 피었다.
찔레의 고운 마음은 하얀 꽃이 되고,
동생을 부르던 그 아름다운 소리는 향기가 되어서 온 산천에 곱게 피어났다.
찔레가 흘린 피눈물은 빨간 열매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찔레'라 불렀다.
(자료 : 다음 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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