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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인원 기념패



글쓴이는 골프를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배운 지는 무려 26년이나 되었습니다. 1984년 여름 미국의 어느 대학원으로 석사과정 공부를 하러 갔는데 주립대학이어서 그런지 학교측이 소유한 골프장이 두 개가 있었어요. 하나는 학부생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직원과 대학원생을 위한 것입니다. 학생 수만 3만5천명이었거든요.

한 학기에 54달러만 지불하고 정기권을 구입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었기에 별 저항 없이 골프를 배우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귀국하여 공직근무를 계속하다 보니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없어 몇 년을 쉬었다가 1995년부터 연습장을 드나들거나 가끔 필드에 나가곤 했습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로망은 무엇일까요? 물론 항상 낮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싱글일 것입니다. 싱글이란 싱글 디지트(single digit)의 준말로 소위 한자리 숫자를 의미합니다. 골프(18홀 기준)의 기준 타수가 72타이니 여기에 한자리 숫자인 9를 더해 81타를 치면 싱글 플레이어(single player)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싱글이라고 할 때는 81타 이하를 치는 경우를 말하지요. 프로선수들이 언더파(예컨대 -5)를 치는 것은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고요. 사실 아마추어 골퍼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싱글이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골퍼는 언제나 홀인원의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합니다. 글쓴이가 "허황된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이는 꿈을 꾸어도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홀인원의 확률에 대해 통일된 견해는 없지만 미국 <골프다이제스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아마추어골퍼는 약 1만2,000분의 1, 프로골퍼는 3,500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아마추어 골퍼가 파3인 쇼트 홀에서 1만2,000번 샷을 하려면 3,000회(한 라운드 18홀에는 4개의 쇼트 홀이 있음)의 라운딩을 해야 하는데, 이는 8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골프를 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보통 1주일에 한번 운동을 한다면 1년 동안 52회의 라운딩 기회가 있으므로 3,000회 하려면 57년 간 골프를 쳐야합니다. 따라서 홀인원은 아무리 골프를 잘 치는 프로선수라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찾았던  뉴코리아 골프장(북한산의 스카이라인이 일품임)


그런데 글쓴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홀인원을 네 번 경험했습니다. 혹시 제가 홀인원을 네 번 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한번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골프를 치던 동반자가 세 차례나 홀인원을 했으므로 모두 네 번 경험한 것으로 표현했어요.

맨 먼저 동반자의 홀인원을 목격한 것은 약 10년 전 일입니다. 그린피가 싼 골프장을 찾아 동두천 소재 미군부대인 캠프 케이시(camp casey)로 갔습니다. 2번 홀에서 동반자가 샷을 날린 공이 그린 위에 안착하더니 굴러서 홀 컵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도우미가 있었지만 숫자가 부족하여 우리는 직접 카트(cart)를 끌고 다녔기에 동반자에게 축하만 해주고 그냥 끝났습니다. 네 사람 중 누구도 홀인원을 하거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04년 10월말, 글쓴이는 사업을 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수원소재 태광CC에 갔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3주전 맹장염수술을 받은 뒤여서 클럽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그냥 나갔습니다. 후반 인코스 6번홀, 그린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도우미는 거리가 155m라고 해서 5번 아이언을 빼들고는 양팔을 겨드랑이에 붙이고 헤드 업(head-up) 없이 공을 보면서 힘을 뺀 채 가볍게 스윙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이 클럽 페이스의 한 가운데에 맞았는지 공을 쳤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는데 동반자들이 굿 샷(good shot)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솔직히 동반자의 굿 샷이라는 말은 그냥 예의로 공이 바로 나가면 불러주는 립 서비스이지요. 그런데 그린 위에 떨어진 공이 한번 바운스(bounce)를 내더니 홀 컵으로 사라졌습니다. 동반자와 뒷팀의 대기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이 돌발적인 사태를 어찌 수습할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급한 김에 지갑에서 현금 10만원을 꺼내 도우미에게 건네주고는 경기과에 연락하지 말도록 부탁했습니다. 경기과에 연락하면 홀인원증명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사례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현직 공무원으로서 홀인원사실이 밝혀지는 게 싫었습니다. 나를 초청한 친구도 홀인원을 처음 보아 기분이 좋다며 10만원을 도우미에게 주었습니다. 도우미는 졸지에 20만원을 챙긴 셈이지요.

홀(hole)로 걸어갔습니다. 동반자 중에는 이미 홀인원을 경험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 분은 도우미가 홀에 들어있는 골프 공을 그냥 꺼내려하지 중단시키더니 홀 주변에 수건을 깔게 하고는 홀을 향해 큰절을 시킵니다. 도우미는 아무런 주저 없이 절을 하더니 공을 꺼냅니다. 글쓴이는 아무리 홀인원이 좋더라도 도우미에게 절을 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일은 저지러진 후였습니다.

글쓴이는 동반자들에게 간단한 기념품이나 사 주고 이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동반자들은 홀인원기념패를 만들어 정식으로 전달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약 1개월 후 동반자를 초청하여 골프를 접대하는 바람에 거금 1백만원을 지출하고 그 대신 크리스털 기념패가 전리품(?)으로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공직을 명예퇴직 하였으니 홀인원도 그리 큰 행운은 아니었나 봅니다.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 골프장  


세 번째는 지금부터 약 3년 전 직장의 OB들이 모였을 때입니다. 퍼블릭인 안성베네스트CC의 쇼트 홀인데 거리가 무려 약 180m(약 200야드)를 넘었습니다. 동반자 A씨가 페어웨이 우드로 샷을 날렸는데 그린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지만 그린주변의 짙은 안개로 실제로 공이 어디쯤 낙하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들은 천천히 걸어서 그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A씨의 공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공을 열심히 찾고 있는데 저쪽에서 잔디정리를 하는 인부가 공이 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A씨는 홀인원을 한 것입니다. 도우미는 즉석에서 비단 복 주머니를 꺼내 홀인원한 공을 담아 주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도우미가 프런트에 가서 홀인원했다고 신고하자 골프장 측에서는 즉석에서 홀인원증명서와 부상으로 골프 공 한 박스를 A씨에게 전달합니다. 역시 삼성그룹에서 운영하는 골프장답게 뒷마무리가 깔끔합니다. 나중에 우리는 A씨에게 홀인원 기념패를 전달하고 골프접대를 받았습니다.

네 번째 홀인원은 바로 지난 9월 4일입니다. 신안CC의 마운틴코스 135미터 거리의 쇼트 홀에서 J씨가 샷을 날렸습니다. 이 분은 드라이브는 엄청 장타인데 아이언은 거리가 나지 않는다면서 5번으로 쳤습니다. 깃발을 향해 똑 바로 날아가던 공은 바닥에 닿자마자 한번 튀기고는 홀 컵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J씨를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린에 도착하자마자 도우미는 J씨에게 수건을 깔고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면 홀을 향해 절을 하라고 합니다. J씨는 감지덕지하면서 절을 합니다. 홀인원을 처음 한 J씨는 제 정신이 아닌 듯 합니다. 나는 J씨에게 10만원을 도우미에게 주라고 했는데 그는 10만원은 너무 적다면서 15만원을 줍니다. 이 도우미는 약 1년 전 개명(改名)한 후 1달에 평균 한 번 꼴로 홀인원을 본답니다. 개명이 행운을 불러다 주는군요.

글쓴이는 약 7-8m의 거리에 온 그린(on green) 되었는데, 도우미의 조언을 듣고 친 퍼팅이 포물선처럼 반원을 그리다가 홀에 들어가 버디(birdie)를 잡았습니다. 버디(-1)는 기준타수 보다 한 타 적게 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동반자들은 홀인원에 정신을 잃은 나머지 내가 기록한 버디는 축하해줄 생각도 아니합니다. 골프 치면서 버디를 기록하고도 이처럼 푸대접받기는 처음입니다. 다른 두 사람도 모두 파를 기록하여 네 명이 홀인원, 버디, 파, 파를 했습니다. 아마추어로서는 최고의 기록일 것입니다.

다음 홀로 이동하여 대기 중인데 경기과 직원이 화환과 카메라를 들고 나타납니다. 도우미가 연락을 한 것입니다. 경기과 직원은 공을 넣을 비단 복주머니를 가지고 왔으며, 동반자 모두 단체기념사진을 찍은 후 사진과 홀인원증명서 및 기념품을 택배로 발송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J씨에게 기념패를 만들어 주기로 하고 10월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네 번의 홀인원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홀인원 뒤풀이는 너무 과도합니다. 미국 같은 골프선진국에서는 보통의 경우 홀인원하면 운동을 마친 후 홀인원을 한 사람이 동반자들에게 간단하게 맥주한잔 또는 간이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물론 기념패를 만들어 주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홀인원하고 나면 기둥뿌리가 빠집니다. 물론 골프회원권을 가진 골퍼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에 골프장에 수 백만 원 짜리 기념식수를 하고, 동반자들을 초청하여 운동을 하며, 기념품을 사 주는 것은 별 부담이 안 될 것입니다. 심지어 도우미에게 옷을 사 준다는 말도 들립니다. 홀인원의 영광에 비하면 그 정도의 부담은 감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봉급생활자에게 뒤풀이 비용은 큰돈으로 분명 과소비입니다. 오죽했으면 홀인원보험이 생겼을까요? 앞으로 이런 분야도 좀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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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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