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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동이>가 60회를 끝으로 종영되었습니다. 방영이후 줄곧 시청률 30% 전후를 넘나들던 동이가 SBS <자이언트>에 뒤쳐 한때 20% 대 초반으로 하락한 적은 있었으나 그래도 <선덕여왕>에 이어 MBC의 자존심을 지켜준 드라마였습니다.

극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과 상당히 달라 비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동이가 오태석-장희빈-장희재-장무열의 집요한 공격과 술수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숙빈 최씨가 되고 아들인 연잉군(후일 영조)을 성군으로 키우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습니다. 숙종을 비롯하여 서용기-차천수-인현왕후-심운택이 시종일관 동이를 지켜주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막판에서는 인원왕후까지 동이의 진심을 이해하고 그녀를 적극 지원합니다. 특히 숙종은 지금까지 왕은 근엄해야 한다는 기본 틀을 깨고 동이와 알콩달콩한 연애를 해서 소위 "깨방정 숙종"이라는 닉네임을 얻었습니다.

드라마는 주연들의 연기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감칠맛 나는 조연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니까요. 일부에서는 내세울만한 조연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있어 드라마는 빛을 발했습니다. 동이에서 제1의 조연은 당연히 숙종의 대전내관인 상선영감일 것입니다. 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때마다 숙종과 동이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났거든요. 황주식과 영달이도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비록 악역이지만 장희재도 특유의 턱수염을 기른 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나중에 등장한 왕자 금의 역을 맡은 이형석 군도 총명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시청자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 주연배우인 동이 역의 한효주, 숙종 역의 지진희, 장희빈 역의 이소연, 차천수 역의 배수빈, 서용기 역의 정진영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현왕후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지만 박하선의 연기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으며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말미에 언급합니다.  
   

 
▲ 조선최고의 중매쟁이 상선영감 역의 정선일 
 


"전하! 천상궁이 거처할 전각이 완성되었다 하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하오나 전하, 처소를 옮기시는 일은 조금 좀 미루어야할 듯 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처소의 나인 몇 명이 병에 걸렸답니다. 그래서 송구하게도 <그 날>은 조금 기다려서야 할 듯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 상궁과의 합궁을 정식전각으로 거처를 옮긴 후 치르려고 기다리시지 않으셨습니까?"
당황해 하는 숙종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는 상선의 표정이 백만 불 짜리 입니다. 

그런 후 승은상궁이 된 동이가 답답해 할 것을 걱정해 변복을 하고 주막으로 나온 숙종은 황주식과 영달 그리고 동이를 불러 술잔을 주고받으며 동이를 위로해 줍니다. 그런데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는 천둥번개로 변하고 밤새 내릴 기색이어서 환궁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할 수 없이 숙종과 동이는 주막에서 쉬어가기로 합니다.  


숙종에게 가마를 움직일 수가 없음을 아뢰고 문 밖으로 나온 상선은 소나기를 피해 주막에서 밤을 보내는 동이와 숙종을 생각하며, "전각이 완성되길 그리 오래 기다리셨는데, 주막이라니! 허, 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방영 후, 네티즌들은 "오늘 상선영감 대사가 짱이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동이가 재건된 검계의 수장인 게둬라를 도피시키려 한 죄를 스스로 장무열에게 자복하여 궁에서 쫓겨나 사가에 머물고 있을 당시 민정시찰을 핑계로 궐 밖으로 나와 대취한 숙종을 동이에게 모시고 간 사람도 상선이었습니다. 이날의 합방으로 조선 최고 임금의 한 분인 연잉군(금)이 탄생했으니 상선의 공은 후대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 코미디언 뺨친 이희도(황주식 역)와 이광수(영달 역)


장악원 직장인 황주식과 악공 영달은 동이가 장악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는데요. 황주식은 처음에는 동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영달은 처음부터 동이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민정시찰을 나갔던 숙종이 신분을 감추고 한성부 판관으로 행세하며 동이와 황주식 및 영달을 만나 돼지껍데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었는데, 나중에 궁궐에서 자신들과 술을 마셨던 판관이 지엄한 숙종임을 알고는 까무라쳤는데요. 특히 숙종은 희빈의 후궁책봉식에 황주식과 영달을 별도로 불렀고, 임금을 능멸한 죄로 큰 벌을 받으리라 생각한 그들에게 숙종은 돼지껍데기는 아니지만 맛있는 어식(御食)을 내렸다며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이 때 두 사람의 표정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어요.

그 후 숙종은 동이 및 이들과 함께 임금으로서가 아니라 판관으로서 주막에서 다시 술을 마신 적도 있습니다. 힘든 전하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지요. 오태풍은 대전내관이 다가와 황주식과 영달을 찾자 비로소 이 두 사람이 임금과 특별한 관계임을 알고는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말 꼴볼견입니다.


황주식 역의 배우 이희도는 드라마 <명가>에서 최 부자집 마름으로 못된 짓을 하다가 도망가서 돈으로 벼슬을 구한 다음 최부자를 욕보이는 악역을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했고, 영달역의 이광수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광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동이>에서 그 인상을 확실하게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네요.  


 

▲ 악역을 잘 소화한 장희재 역의 김유석



장옥정(이소연 분)이 명성대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숙종으로부터 후궁첩지를 받았는데 이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숙종의 모후인 명성대비인데요. 그녀는 희빈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는 것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남인의 거두인 좌상 오태석과 오윤 그리고 장희재가 이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드디어 무서운 음모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어요. 장희재가 "그럼 그 눈에 흙을 집어넣으면 된다"라고 장담했는데, 이는 바로 명성대비를 시해하겠다는 주장입니다.


그런 일이 있는 후 명성대비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의식을 잃었습니다. 장희재는 내의원을 동원해 명성대비에게 올리는 탕재에 백출부자탕을 넣고는 이를 중전인 인현왕후가 저지른 것으로 몰아세워 결국 중전을 폐위하게 만듭니다. 나중에 동이가 이 사실을 밝혀 인현왕후는 복위하게 되지요.

그 이후부터 장희재는 여동생인 장희빈과 남인의 거두인 오태석을 오가며 동이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 번번이 실패하여 나중에 귀양을 가게 되었어요. 장희재가 그 희한한 턱수염을 한 모습으로 입을 씰룩거리며 특유한 웃음을 지을 때 꼭 동이를 괴롭혔습니다. 귀양 중 전 재산을 구휼식량으로 내놓은 대가로 궁으로 복귀한 장희재는 결국 장희빈과 함께 죽음을 당했는데, 김유석은 악역을 잘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 총명한 왕자 연잉군(금)의 역의 이형석


드라마 종반부인 45회에 처음 등장한 동이의 소생인 왕자 연잉군(금/후일 영조)은 선재(仙才)라고 불릴 정도로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과거보는 선비들도 익히기 어렵다는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스스로 깨우쳤가 때문입니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는 천재성을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저자거리에서 지붕위로 올라가 또래의 조무래기들과 함께 행차를 구경하던 어린 아이가 어른의 호통에 지붕에서 내려오려다 지붕사이로 빠져 선비가 술을 마지는 주막 아래로 떨어집니다. 깜짝 놀란 선비가 한 아이의 목을 잡고 때리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아이가 소리칩니다. 
"그거 놓지 못하겠느냐? 보아하니 선비인 것 같은 데 선비의 언행이 어찌 그리 무도한 것이냐?"

"뭐라?"
"자고로 물이귀기천인(勿以貴己賤人)하고, 물이자대이멸소(勿以自大而蔑小)라, 나를 귀하게 여김으로서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자기가 크다고 해서 남의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거늘 아무리 양반이라고 어린 아이를 그리 심하게 손찌검하다니, 어서 아이를 놓아  주거라!" 


기가 막힌 선비가 호통을 칩니다.
"네 이놈, 어린 천 것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뭣들 하느냐? 저놈을 잡지 않고?"
"멈춰라! 나는 왕자니라! 나는 이 나라의 왕자란 말이다!" 

이 아이가 바로 왕자 금입니다. 숙종인 아버지를 한성부판관이라고 생각하고는 거침없이 "자네"라고 표현하는 당돌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세자의 책례(일종의 책걸이)와 종학의 중간시험인 서도(書道)에서 소학은 모르지만 대학과 중용은 외울 수 있다고 하여 임금과 선생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미를 모함하는 말은 참지 못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동이의 철저한 교육으로 가난한 백성을 위해 군왕이 해야할 도리를 몸에 익혔습니다. 장희빈의 소생인 세자(윤찬 분)와도 형과 아우라고 부를 만큼 친하게 지내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 가련한 인현왕후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박하선 
 


숙종 역의 지진희는 왕의 근엄함을 깬 인물이지만 중전인 인현왕후는 정말 가련한 여인입니다. 왕실의 혈통을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숙종으로부터 외면 받고, 중전이 되려는 간사한 후궁 장희빈의 모함에 빠져 국모의 자리에서 폐위가 되면서도 인현왕후 역을 맡은 박하선은 그 슬픔을 온몸으로 추스르며 기품 있고 인자하며 고고한 아름다움을 훌륭하게 연기하여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녀는 폐위된 후 동이(숙빈 최씨)와 서인들의 노력으로 장희빈-장희재와 남인일당의 모함이 발각되어 이들 남매는 축출되고 인현왕후는 중전으로 복권되어 궁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심장병으로 인해 곧 숨을 거둡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극에서 여러 왕비들이 배출되었지만 비운의 왕비 역을 박하선처럼 이토록 완벽하게 소화한 사람은 드물었다고 생각됩니다.

동이가 승은상궁이 되기 직전 동이에게 숙종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 당부하는 연기를 하는 그녀의 형언할 수 없는 표정, 절제되고 떨리는 가녀린 목소리, 진심으로 자신의 지아비였던 임금을 모시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그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숙종에게 자신을 이를 중전으로 동이를 추천할 만큼 동이를 아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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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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