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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도림 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양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시청역에 정차하자 밖에서 기다리던 나이 지긋한 승객 한 분이 객차 안을 들여다보며 이 차의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서 있던 한 승객이 <소요산 행>이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승차하지 않고 그냥 보내고 맙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전동차의 중년부인이 남편에게 묻습니다. "소요산이 어디야?" 아마도 남편도 모르는 듯 했습니다. "글쎄, 서울 시내인가?"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산이지만 평소 등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위치를 잘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소요산 역은 북쪽으로 달리는 1호선 전철의 종점이기에 서울도심에서 청량리, 성북, 의정부, 양주, 동두천 방향으로 가는 승객은 무조건 타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승객이 타지 않은 것은 그 역의 위치에 익숙하지 않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근래 남쪽행도 병점 다음에 서동탄 역이 생겨 서동탄 행 열차가 오면 수원을 경유하는지 잘 몰라 헷갈릴 정도입니다.

최근 저축은행사태로 나라가 무척 시끄럽습니다. 그동안 이 저축은행을 감독하였던 금융감독기관의 간부들도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습니다. 어제는 저축은행사태에 관련된 전직장관출신 현직 대학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입니다. 문제는 왜 서민들이 저축은행에 예금을 많이 했을까하는 것입니다. 저축은행은 원래 상호신용금고였습니다. 상호신용금고는 1970년대에 사채업을 제도권금융으로 끌어들인 것이랍니다. 신용금고는 영세 상공인을 위한 금전 융통, 상호 신용계의 구성, 어음 할인, 대출 등에 관한 일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로 이용자가 목돈을 쓰고 푼돈으로 갚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게 김대중 대통령집권기인 2002년 3월부터 저축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은행만큼 믿을 만한 금융기관도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을 제1금융권 및 제2금융권으로 구분합니다. 제1금융권은 안정적인 은행을 말하며 제2금융권은 금융기관 중에서 은행을 제외한 그 밖의 종합금융회사·보험회사·단자회사·투자신탁회사·증권회사·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브리태니카 사전의 정의)입니다. 제2금융권은 고수익·고위험 구조입니다. 상호신용금고는 명칭만 저축은행으로 변경되었지 제2금융권에 속합니다. 문제는 일반서민들이 보통의 은행과 저축은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축은행은 "저축"이라는 용어와 "은행"이란 번드르르한 이름을 가졌으니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은행 중에서도 가장 좋은 은행으로  오해하겠지요. 

소요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국민이 있는 것처럼 저축은행이 일반은행에 비해 안전성이 낮음을 아는 서민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민들은 은행이라면 무조건 안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저축은행에 피 같은 돈을 맡겼을 것입니다. 문제가 된 저축은행 앞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촌티가 나는 서민들입니다. 오늘날 저금리 시대에 일반은행에 비해 높은 이자를 준다는 유혹에도 이끌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은행경영자의 도덕적인 해이와 감독기관의 직무태만 및 유착에도 기인하지만 상호신용금고를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법당시 금융기관의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국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 좋은 위정자들은 우리 국민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 못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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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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