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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에는 만수산(575m)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자락에는 고찰 무량사가 있는데, 무량사는 조선조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 때 세상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생을 보낸 장소로 더욱 유명한 절 집이다. 


절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초기에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보물 제356호)·5층석탑(보물 제185호)·석등(보물 제233호)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당간지주와 김시습의 부도가 남아 있다.(자료 : 다음백과사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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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표석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다리를 건넌다.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양쪽에 숲이 무성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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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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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왕문으로 가는 길
 

당간지주를 둘러본 후 천왕문을 통과하니 널따란 경내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지금까지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답사했지만 이토록 극락전 앞뜰이 넓은 경우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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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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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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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석탑 뒤로 보이는 극락전


바로 우측에는 범종각이 있고 그 옆에는 이름 모를 아름드리나무가 세월의 연륜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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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보물인 석등과 5층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 뒤에는 2층 누각인 극락전이다. 이 누각은 겉으로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위 아래층이 구분되지 않고 통층(通層)으로 되어 지어졌다.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단 위에 소조아미타삼존불상을 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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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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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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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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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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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아미타삼존불상


우측엔 명부전이, 좌측엔 영산전과 천불전이 있다. 천불전 옆에는 영정각이다. 이 속에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초상화는 김시습이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약간 찌푸린 눈, 꼭 다문 입술, 눈의 총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초상예술의 진수라 할 전신이 탁월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자료 :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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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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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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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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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그 뒤쪽에는 산신각이 있다. 온갖 귀신을 다스리는 산신이야말로 전지전능한 신이다. 호랑이의 시중을 받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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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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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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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무령사 입구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무진암으로 들어가면 그 입구에 부도가 있는데, 이 중에는 김시습의 부도도 있다. 또한 김시습의 묘를 알리는 묘비도 있다. 부도는 고승대덕의 사리를 보관한 곳이다. 그런데 사리는 화장을 통해서만 수습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다비의식(화장)을 통해 장례를 지내는데 그러면 시신의 뼈와 재만 남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화장의 경우 뼈를 수습하여 강물에 뿌리거나 납골당에 보관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화장한 김시습의 묘비가 있는 것을 보면 뼈를 수습하여 매장 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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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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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묘비


매월당 김시습! 그는 생후 8개월에 글 뜻을 알았고, 3세에 능히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났다. 5세에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후일 중용하리란 약속과 함께 비단을 하사 받기도 했다. 과거준비로 삼각산에서 수학하던 21세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대권을 잡은 소식을 듣자 그 길로 삭발하고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31세 되던 세조 11년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 37세에 한양으로 돌아와 환속하여 농사를 직접 짓고 결혼도 했다. 벼슬길로 나아갈 의도를 갖기도 했으나 현실의 모순에 불만을 품고 다시 관동지방으로 은둔, 방랑을 하다가 충청도 무량사(無量寺)에서 59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자료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무량사에 가면 매표소를 통과한 후 일주문부터 시작되는 고즈넉한 풍경과 잘 정리된 전각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기구한 일생을 보낸 김시습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어 매우 뜻 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 여행안내 : 서해안고속국도 대천IC를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보령방면으로 간다. 보령에서 40번 국도로 부여쪽으로 가다가 외산에서 지방도로를 따라 좌회전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끝.     

         ☞ 스크랩 안내 :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penn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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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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