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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출한 아내로부터 자신이 서랍에 넣어둔 어떤 물건을 찾아 달라는 전화를 받고는 서랍을 열었습니다. 서류 하나를 찾다가 누런 편지 봉투 한 개를 발견하고는 다시 살펴보니 겉봉에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글씨체가 매우 눈에 친숙했습니다. 아~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편지는 지금으로부터 30년 년 글쓴이가 당시 소개받은 여자였던 현재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올해로 결혼 30주년이 지났지만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편이라 부부의 소지품을 살펴보거나 휴대폰의 문자메시지 또는 통화내역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내가 결혼 전 내가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편지를 발견하고는 상당히 이외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중에 귀가한 아내에게 왜 편지를 버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어찌 편지가 보관돼 있는지 모르겠다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편지를 펼쳤습니다. 그 당시 아내는 경남지방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내 편지를 받고는 동료선생님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그 때 직장에서는 대부분 수기(手記)로 글을 작성할 때였고, 또 학창시절에도 글씨를 제법 잘 쓴다는 말을 들었기에 내가 정성을 들여 쓴 편지 봉투만 보고도 그들은 나를 좋은(?) 신랑감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니 손으로 쓰는 글씨가 엉망이어서 격세지감이로군요. 

우체국 소인은 1981. 5. 25   

때는 1981년 5월 24일, 내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xx 씨,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이제 그 하순을
거의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보람 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셨는지요.

(중략)

지난번 처음 만난 이후 약 2주간의 시일이
경과되었습니다만 가까운 곳에 있었더라면
몇 차례 더 만남의 기회를 가졌을 텐데
서울과 xx과의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생각되는군요.  

처음 만난 인상이 내 가슴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고향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xx씨의 그 맑고 환한 모습,
구김살 없는 웃음, 재미있게 말하는 태도와
건전한 마음의 자세에 깊은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인가 봅니다.

우리들의 이 만남을 보람 있고 뜻 깊게
간직하기 위해 서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자주 만나서
의견의 합치점을 찾도록 합시다.

내내 건강하시길 빌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꽤 신경을 써서 편지를 보낸 듯 합니다.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도 들고요. 오늘날 젊은이들은 이런 식의 편지를 보내지는 않겠지요. 결혼 30년이 지난 후 아내가 현재와 같은 독종으로 변할 줄 알았더라면 이런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후 거의 편지를 보낸 기억이 없는데, 그로부터 5개월 후에 결혼했습니다. 나도 내 소지품에서 아내로부터 받은 답장을 찾아내었습니다. 내가 편지를 보낸 이틀 후 작성한 편지입니다. 배달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편지를 받은 날 밤에 작성한 듯 해요. 편지지 3장에 깨알같은 글씨로 학교생활과 방과후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고는 아내가 나에게 무척 호감을 갖고 있음을 단박에 눈치채고는 그 후부터 그녀는 나의 평생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내의 답장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의 유수(流水)와 같이 흘렀습니다. 비록 얼굴에 주름은 지고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이팔청춘입니다. 우리 부부는 두 아들과 함께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만일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총각으로 늙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아내와 함께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하렵니다.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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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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