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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에는 3대의 신비가 전해 내려옵니다. 이 3대 불가사의한 신비는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종석대, 그리고 국가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비석에서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입니다. 경남 일양시 무안면 무안리 903-3 소재 표충비각은 조선 영조 18년(1742)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의 5대 법손 남붕이 사명당의 높은 뜻을 기리어 세운 비각입니다.

비의 재질은 검은 돌인데 전면에는 송운대사(松雲大師) 사명당의 행적을, 후면에는 스승인 청허당 서산대사 휴정의 공덕과 기허대사 영규의 사적을, 측면에는 표충비 사적기(表忠碑 事蹟紀)를 각각 새겼습니다. 따라서 비록 비는 한 개이지만 3인의 행적을 기록했다고 하여 표충비각 입구의 출입문에는 삼비문(三碑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삼비문


 
   
사명당은 명종16년(1561) 선과에 급제하고, 선조8년(1575) 묘향산에 들어가 서산대사로부터 선종을 강론하고 크게 깨달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선조 37년(1604) 국서를 받들고 강화사로 일본에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담판해 이듬해 포로 3,500여명을 조선으로 귀환시켰습니다.

국가유사시에는 비각에서 땀이 흘러, 사명당 정신에 대한 영험으로만 알고 있을 뿐 학자들도 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땀은 비석의 4면에서 여름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처럼 맺혀 며칠씩 계속 많은 양이 흐리기도 하고, 앞면과 옆면 혹은 한 면과 두 면에서만 잠깐씩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신기한 것은 글자의 획안이나 머릿돌과 좌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땀이 흐른 기록을 보면 갑오동란, 한일합병, 8.15광복, 6.25전쟁, 4.19의거와 5.16혁명, 박정희 대통령 시해, 아웅산 폭발사건, 대한항공 001기 피격 등 지난 100년 간 확인 된 것만 30여 회에 달한다고 합니다.

 땀 흘린 역사



삼비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표충각이 있는데, 스님의 존영이 모셔져 있고 좌측에는 예상외로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초상화가 결려 있습니다. 밀양군 문화해설사는 왜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 등의 공적을 기리는 표충각에 박정희 대통령 부부를 모신 것은 나라경제가 어려울 때 그 발전의 기초를 마련한 박 대통령의 업적을 기린 뜻이라고 설명하더군요.

 표충각


 

 표충각 내부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표충비각인데 그 앞뜰에는 거대한 향나무(밀양 무안리 향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원래 향나무는 위로 자라는데 원가지를 자르고 곁가지를 옆으로 뻗게 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옆으로 뻗은 향나무의 모습도 정말 신비합니다.

 솟을 대문


 

 향나무


 

표충비는 반듯한 비각안에 세워져 있는데 보호막으로 인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각은 높이가 380㎝, 비신이 275㎝, 넓이 98㎝, 두께 56㎝의 장대한 비(碑)로서 얼핏 광개토태왕의 비를 연상시키는군요.


 


 


 

 


표충비각의 좌측에는 홍제사가 있는데 중심법당에 축법보전이라는 현판이 붙은 게 매우 특이합니다.

 홍제사


 

홍제사 축법보전


밀양에는 명찰 표충사가 있습니다. 표충사는 밀양의 동쪽 영남 알프스 재약산(1,108m)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밀양의 서쪽에 소재한 표충비각과는 위치가 다름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표충사

표충비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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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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