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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행궁은 설치목적에 따라 구분되는데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과 같이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이 있고,
온양행궁처럼 휴양을 목적으로 지은 행궁도 있으며,
화성행궁처럼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기 위해 건설한 행궁이 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20년(1796) 수원성을 쌓은 뒤
팔달산 동쪽기슭에 세운 행궁으로
수원성의 원래 이름이 화성이었으므로 화성행궁이라고 부릅니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능인
현륭원에 13차례나 참배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었습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의 집무실로 활용되던 공간입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크며,
성곽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의 시설이 사라졌으나
1996∼2003년 1단계 복원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화성행궁(사적 제478호)의 주요건축물에 대한
낮과 밤(야경)의 풍경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 신풍루(新豊樓)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을 뜻하는 말로서 
  정조의 수원(화성)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0년(정조 14년) 세워졌는데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음.




 

▼ 좌익문(左翊門)
신풍루 안족 중양문 앞에 있는데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임.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음.


 


▼ 중양문(中陽門)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지키는 내삼문으로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좌협문 및 우협문으로 구성


 

▼ 봉수당(奉壽堂)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가 1997년에 복원됨.
정조는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함.


 

▼ 경룡관(景龍館)
장락당의 바깥문으로 사용했던 부속건물.
1794년(정조 18년) 세워졌는데, 2층 구조로 만들어
1층에 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 이름 붙임.


 

▼ 장락당(長樂堂)
1795년 정조가 행차했을 때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1794년 봉수당의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짐.


 

▼ 장복문(長福門)


 

▼ 비장청(裨將廳)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
(비장은 관찰사나 도지사 또는 지방 수령들이
거느리던 막료)


 

▼ 서리청
서리들이 사용하는 건물
(서리란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


 

▼ 남군영(南軍營)
장용영 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 200명이 살면서 지키는 건물.
남군영은 신풍루를 마주보는 쪽에서 보면 좌측에 위치함.


 

▼ 집사청(執事廳)
궁궐의 잡다한 사무를 보는 집사들이 사용한 건물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


 

☞ 삼각대 없이 야경촬영을 한 탓에
사진이 거칠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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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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