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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는 산 이름과는 달리 우리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고성8경 중 제1경입니다. 금강산 건봉사로 부르는 이유는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건봉산 감로봉의 동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 아도화상이 창간한 천년고찰로서 일제 강점기에도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 낙산사 등을 말사로 거느린 전국 4대 사찰 중의 하나였지만 6.25동란(한국전쟁)으로 전소되면서 조계종에서는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불이문을 지나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오르면 건봉사 적멸보궁입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지만 이곳에는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게 특이합니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사리는 본래 통도사에 있다가 임진왜란 중 일본이 강탈해 가져갔는데, 고승 사명대사가 일본에 건너가 돌려 받아 건봉사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건봉사 적멸보궁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건봉사에서 양성하였던 승병의 숫자가 6,000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부도군 앞에는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고, 주차장 옆에 사명당 승병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영정, 책자,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사명당 승병기념관



건봉사 입구 삼거리에 조성한 사명대사 동상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자료를 잡고 있는 형상입니다. 의병장 김덕령이 대사에게 보낸 글과 허균이 쓴 비문을 돌에 새겨 놓았네요.


 


 


 


 


 


 


 


 


 


 

  
☞ 건봉사로 가는 길은 통제되었다가 1988년 작은 출입로가 열렸습니다. 글쓴이는 고성8경 중 제3경인 화진포에서 남하하여 건봉사로 들어갔는데 군부대 검문소를 두 번이나 통과해야 했습니다. 현재 도로공사가 한창이어서 일정구간은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남쪽에서 북쪽의 건봉사로 진입하는 길목에도 검문소가 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사명대사 유정의 일생] 

조선중기의 고승인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의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입니다. 경상남도 밀양출신으로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후 승과에 급제한 이후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 휴정(休靜)을 찾아가서 그의 법을 이어 받았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금강산에서 의승병을 모아 휴정의 휘하에 들어가 승도대장이 되어 명나라 군사와 협력해 평양성 탈환의 전초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604년 국서를 휴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강화를 맺고 전란 때 포로로 잡혀 양민 3,000 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한 다음 선무원종일등공신에 서훈되었습니다. 말년에는 병마와 싸우다 임종했습니다. 

 


[건봉사 개요]
 
신라시대 법흥왕 7년(서기 520년)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하였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이다.

그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사찰을 중수(重修)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하였는데 1358년(공민왕 7)에는 나옹(懶翁)이 사찰을 중수하고 다시 건봉사라고 개칭하였다. 1464년(세조 10)에는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12과를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며 구한말 개화사상과 신문화교육을 위해 봉명학원이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아군 5,8,9사단, 미군 10군단과 북한군 5개 사단이 이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때 건봉산지역 전투로 사찰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으나 1994년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옛 절터와 대웅전, 불이문(강원 문화재자료 35), 9층탑을 비롯한 7기의 탑, 48기의 부도(浮屠), 31기의 비석이 있다.(자료/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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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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