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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설경



대둔산(879m)의 동쪽 2㎞ 지점에 위치한 배티재(해발 350m)는 예로부터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통로였으며, 현재 여수-청주를 잇는 17번 국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배티재는 대둔산 장군봉으로 오르는 산행기점이자 대둔산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조망대이기도 합니다.


 


 


 

배티재는 이치(梨峙)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황진 장군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치대첩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울 때 임진왜란 3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성대첩, 그리고 행주대첩이었는데, 이곳에 세워진 <이치전적비>에는 3대첩 중 진주성대첩을 빼고 이치대첩을 포함시키고 있어 매우 헷갈립니다. 이렇게 해석이 다를 바에야 차라리 임진왜란 4대첩으로 규정하면 좋겠습니다.

이곳에는 이치전적비와 황진장군 이치(이현)대첩비가 세워져 있어 왜란 당시 장군의 활동상을 알 수 있습니다. 황진 장군은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출신의 무신으로 시호는 무민공(武愍公)이며, 정승 황희(黃喜)의 5세손입니다. 1576년(선조 9) 2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경고하였고, 같은 해에 동복현감(同福縣監)에 임용되어 틈틈이 병법을 연습했습니다.


 


 


 


 


 

검정돌에 새긴 안내문은 읽기가 힘든게 흠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현에서 군사를 이끌고 전라감사 이광(李洸)을 따라서 용인(龍仁)에 출전하였으며, 금산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길목인 이치(梨峙)에서 왜적을 격퇴시켜 호남을 보전하는 데 큰공을 세웠는데, 이 공으로 익산군수(益山郡守)로 충청도조방장(忠淸道助防將)을 겸하였습니다.

1593년 2월 전라병마절도사 선거이(宣居怡) 장군을 따라 수원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으며, 3월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가 되어 죽산성(竹山城)을 점령한 뒤 퇴각하는 왜군을 상주(尙州)까지 추격하여 대파했습니다. 같은 해 6월 적의 대군이 진주성을 공략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진주성에 입성하여 순성장(巡城將)이 되어 9일간이나 성을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황진 관련자료 : 남원시 향토문화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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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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