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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도는 강화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화도의 서쪽에 있는 석모도만큼 큰 섬입니다. 그간 이 섬에 가려면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교동도의 월선포 선착장으로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해야 했지만 7월 1일부터 강화도-교동도를 이어주는 연육교인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이제는 매우 편리하게 섬을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교동도는 서해의 최북단에 위치한 민간인출입통제 지역이어서 이곳을 출입하려면 현지 군부대(해병부대)의 검문(신분증을 제시하고 차량 출입증을 교부받아야 함)을 받아야 합니다. 외지인의 교동도 출입은 일출 30분전부터 일몰 30분 후까지만 가능합니다.

 

교동대교는 총연장 3.44km, 폭 13.85m의 왕복2차로 사장교 형태의 교량으로서 총 사업비 890억 원을 투입해 6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습니다.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한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주변에 산들은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입니다. 교동도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습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동대교를 건너온 등산버스는 서쪽으로 진행하더니 고구저수지 남쪽 고구2리에 정차합니다. 최근에는 지방의 리 단위의 행정구역과 마을이름도 대형표석으로 이정표를 만들더군요. 이 모두가 자신의 동네를 홍보하기 위한 것인데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낯선 곳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에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포장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섭니다. 인적이 드문 섬 마을 인근 밭에 설치된 허수아비가 고향의 향수를 자아냅니다. 이곳은 강화나들길이기도 하군요. 민가 옆 수 백년을 참고 견디어 옴직한 대형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석천당이라는 이름의 간판 앞에 나붙은 시(詩)를 읽어볼 시간적인 여유는 없습니다.

 

 

 허수아비

 

 강화나들길 이정표

 

 큰 나무

 

 


처음 만난 이정표(교동면사무소 0.6km, 연산군 유배지 150m)에서 연산군 유배지를 가보지 않은 것은 실수였습니다. 조선의 연산군이 강화도에 유배를 당해 살았다고 추정되는 지역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바로 이곳이며 다른 하나는 교동읍성의 남문 인근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역모에 관련된 왕족들의 유배지는 산간오지(예, 영월에 유배된 단종)와 외딴 섬이었습니다. 이는 죄인을 격리시켜 반정(反正)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지요. 이곳은 연산군 유배지라는 대형표석이 있는데 반해 남문인근에는 연산군이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고 합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조금 더 가니 한증막이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마치 돌무덤처럼 보이는  한증막(汗蒸幕)은 현재 찜질방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목욕시설입니다. 이는 선조들의 병환과 피로를 다스리는 민간요법의 시설입니다. 이 한증막 뒤에 연산군 유배지 표석이 있다고 합니다. 넓은 등산로에는 천화문(天華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네요. 길섶에 말나리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습니다. 화개약수로 목을 축인 다음 효자묘자리에 왔지만 묘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효자묘에 대한 상세한 안내문이 반겨주네요.

 

 

 

 

 

 천화문

 

 말나리

 

 화개약수

 

 효자묘터

 

 


 

효자묘자리 뒤로 허물어진 화개산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화개산성은 총길이 2,168m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축성한 비교적 규모가 큰 산성)으로, 최초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지만 조선 명종(1555), 선조(1591), 영조(1737) 때 증축하고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전목책이 설치된 가파른 길을 오르니 화개산 봉수대 0.2km 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여기서 그냥 봉수대방향으로 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좌측이 화개산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이정표를 만드는 사람들이 숲이 푸른 하절기에는 바로 옆의 정상이 보이지 않음을 간과한 듯 합니다. 따라서 이정표에 좌측으로 정상을 알리는 표시를 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림길 이정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 및 정자 그리고 목재로 만든 화개산 정상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날씨만 좋으면 북쪽 고구저수지 뒤로 북한지역인 황해도 개풍군이 보일텐데 현재는 안개뿐이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현지의 안내지도를 보면 남쪽으로 강화도 마니산과 석모도가 보인다고 하는군요.

 정상의 정자

 

 안개뿐인 남쪽 바다

 

 

 


정상을 뒤로하고 봉수대방향으로 갑니다. 봉수대 쪽으로 먼저 갔던 사람들이 다시 정상으로 오면서 투덜거립니다. 화개산 봉수대는 현재 석단만이 남아 있으며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덕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동쪽 봉천산 봉수로 전달하였다고 합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와 꼬부라진 길을 가니 돌자갈길(너달길)입니다. 임도로 내려서 문무정(文武井) 안내문을 지나자 화개사입니다. 고려 때 창간된 화개사는 한 때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명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머물던 장소였다고 하는데, 중심 전각이 하나뿐인 매우 소박한 절 집입니다. 뜰에는 수령 200년의 보호수 소나무와 보통의 백합보다 꽃이 엄청나게 큰 왕백합이 피어 있습니다.

 

 

 

 

 

 

 너덜길

 

 화개사

 

 화개사 왕백합 

 

 

화개사를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좌측 숲길로 들어서니 교동향교입니다. 향교 옆에는 성전약수가 있는데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가뭄으로 이곳 약수가 마른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는군요.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셨다고 합니다. 전국 대부분의 향교는 주말에 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이곳은 마침 관리인이 문을 열어 주어 내부를 답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대성전의 문은 열어주지 않아 공자의 초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교동향교 성전약수

 

 교동향교 

 

 

 


교동향교를 나와 동쪽의 숲 속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는 것은 교동대교의 개통으로 인한 관광객들로 보여집니다. 화개사와 함께 교동도의 2대 사찰이었다는 안양사(安養寺) 터를 지나 도로로 나와 월선포 선착장으로 갑니다. 지그재그로 가는 길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화나들길 표식을 따르는 일입니다. 지나온 화개산의 정상부는 정오가 다 되어 감에도 안개에 싸여 있군요. 해변가 옆 수로에서 작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니 월선포선착장입니다.

 지나온 화개산(뒤)

 

 

 

 월선포 선착장

 

 선착장 암봉

 

 선착장에서 바라본 석모도  

 

 

오늘 산행에 2시간 1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산행에 나섰다가 이토록 빠른 시간에 하산한 것도, 정오가 되기도 전에 산행을 끝낸 것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무더위에 많은 땀을 흘리다보니 몸은 상당히 지쳤군요. 현지의 지하수로 땀을 씻은 후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배를 채웁니다. 귀가하면서 교동읍성의 남문과 교동면 사무소 소재 대룡시장 그리고 강화도 풍물시장을 답사한 것은 짧은 산행에 대한 산악회 측의 보너스입니다. 교동대교가 개통된 이후 매우 뜻깊은 산행을 했지만 짙은 안개로 조망을 하지 못한 것은 옥의 티로 남습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4년 7월 20일 (일)
▲ 등산 코스 : 고구2리-한증막-화개약수-효자묘터-화개산 정상-봉수대-너덜길-문무정안내문-화개사

                   -교동향교-안양사터-도로-월선포 선착장 교동도 한증막
▲ 산행 거리 : 약 7.5km
▲ 소요 시간 : 2시간 10분
▲ 산행 안내 : 안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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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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