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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입니다.


고려시대 과거제의 실시와 학교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설치되기 시작한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 이념의 보급과
중앙집권체제의 정비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되었습니다.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148번지에 소재한 조선 시대의 향교로
한국 최초의 향교이기도 합니다.

 

 

 

 

 

 

 

 

고려 인종(仁宗) 5년(1127년)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충렬왕(忠烈王) 12년(1286년) 안유(安裕)가
왕을 따라 원(元)에 가서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상을
처음 그려왔는데 이를 교동향교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교동향교는 화개산 북쪽 계곡에 있었는데
조선 광해군(光海君) 원년(1609년) 교동현감이
당시의 경기관찰사에게 위안제를 지내도록 요청하고,
현종(顯宗) 8년(1667년) 각 도의 여러 고을에
배향 신위를 옮겨 정하도록 하면서
교동현감이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습니다.

 

영조(英祖) 17년(1741년) 강화부사 조호신(趙虎臣)이
교동향교를 화개산 남쪽 계곡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습니다.


교동향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관아와는 다소 떨어진 곳이지만 크게 중수하였습니다.
강화도도 아닌 교동도에 위치한 교동향교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상당히 큰 향교임을 설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향교 건물이 퇴락한 것을 1960년에 중수하였으며,
동서 재실과 내외삼문의 개건 및
단청 보수가 198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교동향교는 강화나들길 및 화개산 등산로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교동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누구나 쉽게 향교를 답사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글쓴이는 휴일인 일요일에 방문하였음에도
관리인이 출입문을 개방해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현재 향교는 전국에 산재하고 있지만
대부분 문화재보호를 이유로
평일에도 문을 닫은 경우가 비일비재하거든요.

 

정문인 외삼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명륜당이 있고
그 우측에 노룡암이라는 작은 바위가 있습니다.
이 암석에는 조선 숙종 및 영조 그리고 순조 때의 재사(才士)들이
새긴 글씨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노룡암

 

 

 

 


명륜당 뒤쪽 내삼문은 잠겨 있어 우측의 축대를 통해
내삼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의 문은 굳게 잠겨 있어
공자의 위패는 보지 못했습니다.

 내삼문

 

 내삼문 가는 계단

 

 대성전 출입문

 

 

 

 대성전

 

 대성전에서 본 내삼문

 

 

 

 

 

 

 

 


 

향교 정문 좌측으로 가면 성전약수가 있는데,
관리인은 가뭄으로 인해 약수터 물이 마른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자연현상이라고 합니다.
금년에는 아직까지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향교에서 좌측으로 가면 화개사를 경유하여 화개산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가면 월선포 선착장으로 연결됩니다.


향교 정문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면 홍살문이 있지만
우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였기에
홍살문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201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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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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