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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장군(1537-159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행주대첩의 명장입니다.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권철(權轍),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입니다. 46세 때인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과 호조정랑 등을 거쳐 55세 때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의 여진족을 방어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중에는 전라좌도 도절제사로 충청도 금산의 이치에서 왜군을 대파하였으며 그 공로로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했습니다. 1593년에는 행주산성에서 진을 치고 군관민이 힘을 합쳐 2,800명의 군사로 왜군 3만병을 물리쳤는데 이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입니다. 참고로 임진왜란 3대첩은 한산도대첩(이순신 장군), 진주대첩(김시민 장군) 그리고 행주대첩입니다.

 

대첩 후 장군은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자 관직에서 물러나 별세했습니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영의정을 추서하였고,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소재 장흥관광지에 위치한 권율 장군 묘소를 들어서면
무엇보다도 잘 정리된 묘역이 시원하게 보입니다.

 

우측에는 비각이 있는데, 이곳의 신도비는 원래의 신도비가 마모되자
후손들이 철종 12년(1861)에 새로 세운 것입니다.

그 안쪽의 신도비는 원래 신도비이며,
좌측의 한옥건물은 재실입니다.

 

 

 

 

 

 

 

 

 

 

 비각

 

 신도비

 

 

 

 원래의 신도비

 

 재실

 

 

 

 

 

 

 


묘소는 우측이 돌계단을 통해 오르면 됩니다.
계단 옆에는 개망초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네요.
맨 아래 묘소는 권율 도원수와 두 부인의 묘소입니다.

 

묘비의 마지막에 기록된 都元帥權公慄之墓(도원수권공율지묘)라는 글에서
권율장군의 묘지임을 겨우 확인했습니다.

 

 

 

 

개망초

 

 권율장군 묘

 

 

 

 

 

 

 

 

권율장군 위쪽의 묘는 형인 권순의 묘이며,
맨 위쪽은 아버지 권철의 묘입니다.

묘지에서 내려다보면 맞은 편 일영봉(444m)이 바로 보입니다.
이곳 묘지에서 위쪽으로는 형제봉(547m)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권율 형과 부모의 묘

 

 

 

뒤로 보이는 일영봉

 

 


참고로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투옥되자
원균이 삼도(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수군통제사가 되었는데,
도원수인 권율의 출전명령에도 원균은 왜군의 함정에 빠진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권율은 원균을 불러 곤장을 쳤답니다.

 

이를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함참의장(도원수)이
해군참모총장(삼도수군통제사)에게 곤장을 친 것과 유사하므로
권율과 원균의 그릇과 됨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201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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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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