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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제173호인 울주 망해사지 승탑 

 

 

 

울산의 영축산(352m) 기슭에 위치한 망해사(울주군 청량면 율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동해의 용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합니다.
망해사 홈페이지에서 전하는 창건설화를 살펴보겠습니다.

 

 

◆ 망해사 창건설화 ◆

 

『신라 제 49대 헌강왕 때 경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래소리는 길거리에 가득하였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와 나라는 매우 태평하였다.

 

헌강왕은 오늘날 울산 세죽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동해용왕의 소행이라 하는 일관의 조언에 따라 왕은 그의 측근들에게 명령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게 하니 그 명령과 함께 구름과 안개가 걷히어 졌으므로 이 땅의 이름을 개운포라 하였다.

 

왕은 경주로 돌아오자 이 영축산 경승지를 선정하여 용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망해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그 때 절을 세우라는 왕명이 있자 그것을 기뻐한 동해 용왕은 그의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했고, 그 중 한 아들은 왕을 따라 경주로 들어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 이름을 처용이라 하여 처용이 나온 바위를 처용암이라 하였다. 지금도 개운포 해중에는 이 바위가 남아있다.

 

이 고찰이 언제 어떻게 하여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임진왜란으로 추정), 옛 터만 전해오던 것을 1957년에 전 주지인 김영암 화상이 중건하고, 황무의 터에 버려졌던 유적 등도 찾아내 정리하여 망해사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틀을 잡았다. 

 

망해사에서 출토된 기왓장 가운데에는 "가정(嘉靖) 23년갑진"(조선 중종 39년 1544년) 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도 발견되어 이 때 중건 불사가 이루어 졌었음을 추측케 한다. 이 기와 조각에 새겨진 내용은 망해사 창건 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보물 제173호인 "울주 망해사지 승탑"은
헌강왕 때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승탑(僧塔)은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하는데
이곳 승탑은 2기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서쪽승탑

 

동쪽 승탑


 빛의 반사로 인해 측면에서 찍은 안내문 

 

 

 

 

한국불교 태고종인 망해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범종각,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경내에는 겹벚꽃과 모란(목단)꽃이 피어 운치를 더해 줍니다.

 

 

 

 

 

 

 겹벚꽃

 

 모란꽃(목단)

 

 삼성각

 

 범종

 

 

 

 

 

 

망해사 연혁에 관한 안내문이 햇빛에 반사되지 않은 재질로
잘 제작되어 있어 사진을 찍기가 참 좋았습니다.


다만 울주 망해사지 승탑에 관한 안내문은
빛의 반사로 인해 정면에서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더군요.
(201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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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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