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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소재
고려의 궁궐터(서적 제133호)로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1232년(고려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39년 간 사용했습니다.

 

실제 2년 후인 1234년 본격적인 궁궐의 건립이 이루어졌으며,
궁내에 많은 관아·전각·창고·문이 있었으나
몽골과 화친한 후 1270년 송도환도 때 몽골 측의 요구로 모두 허물어졌습니다.

 

그 후 조선시대 궁정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강화 유수부  건물을 지어
많은 장서와 문서를 보관했으나 병자호란 및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특히 프랑스군은 책과 서류를 약탈해갔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의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및
외규장각(2003년 복원)이 남아 있습니다.  


정문인 승평문을 들어서면 고려궁지의 역사가 담긴 안내문이 보입니다.
고려와 조선으로 나뉘어 잘 설명해 놓았네요.

 

 

 정문인 승평문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강화 유수부 동헌입니다.

그런데 건물의 현판은
이외에도 명위헌(明威軒)이라고 씌어져 있군요.
이 명필 글씨는 영조 때 윤순이 썼다고 합니다.
건물 안에는 유수는 앉자있고
다른 사람은 서 있는 모습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명위헌

 

 

 

 

 

 

 

 


동헌 앞에는 "큰나무"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수령이 400년 된 것입니다.
보호수로 지정될 만 하지는 않지만 역사가 오래된 나무가
"큰나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궁지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외규장각입니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건립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의궤를 보관해 오다가
병인양요 때(1866) 약탈자 프랑스의 눈에 띄어 강탈당하고 맙니다.


이후 양국 간 합의에 의해 2011년 5월
의궤는 우리나라 품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외규장각 내부에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잘 정리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외규장각 우측 계단을 오르면 넓은 공터만 있을 뿐인데
이는 발굴조사결과 고려궁지의 정확한 위치가
문헌상 확인되지 않은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제 34개월 된 손자가
파릇파릇해지는 잔디를 보고 무척 좋아하는군요. 

 

 

 

 

 

 

 

궁지의 좌측에는 강화부 종각이 있는데
이 동종(보물 11호)은 강화산성 성문을 열고 닫을 때 쳤던 종입니다.

 

 

 

 

 

 

종각 아래쪽에는 강화유수부 이방청인데
이는 행정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입니다.

 

 

 

 

 

고려궁지는 건축물이 몇 되지 않아 내부가 무척 썰렁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39년 간 고려의 도읍지였다가 몽골과 화친한 후
개경으로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모든 건축물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집니다. 아무리 당시 고려가 을(乙)의
처지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애써 지은 왕궁을 헐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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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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