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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신도시 장기동 소재 야산(솔내공원 인근)을 산책하던 중

숲 사이로 문화유적 같은 담장과 홍살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은 주로 왕릉과 묘, 관아, 향교, 충신과 열사의 사당 등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나무문입니다.

 

필자는 이곳에 김포 향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까이 가보니 예상외로 묘 2기입니다.

앞쪽에서 보았더라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뒤쪽에서 봐 헷갈렸네요.

 뒤쪽에서 본 묘지

 

 

 

 

 

 


현지(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산 180-16번지)에

세워 놓은 안내문을 보니 심조와 심척의 묘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생소한 인물인데요.

 

현지의 안내문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된 정보를 기초로

두 사람의 생애를 재정리해 보았습니다.

 안내문(햇빛으로 인해 빛이 반사됨)

 

 

 
심조(沈潮, 1694-1756)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호는 정좌와(靜坐窩)입니다.

젊어서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성리학에 심취했습니다.

권상하의 문하생으로 예학에 밝아 1747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된 후

병을 이유로 사직한 뒤 오직 학문연마와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저서로는 『정좌와집』이 있습니다. 사후에 대사헌에 추증되었습니다.

 

심척(心척)은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호는 흡곡입니다.

심효겸의 아들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인조반정 후 정랑(正朗)으로 재임하다가 사퇴하고 고향인 김포로 귀향하였습니다.

학문에 정진하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강화도로 들어가 참전하였고

종군 중 마니산 밑에서 적병에게 사로 잡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해 살해당한 인물입니다.

사후(死後) 이조참의와 충신정려를 받았으며

영조 3년(1727) 강화도 충렬사에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홍살문을 들어서자 2기의 묘가 있는데 앞쪽은 심조의 묘이고 뒤쪽은 심척의 묘입니다.

심조의 묘비에는 "증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동몽교관 정좌와 청송 심공 조 지묘"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묘비에 의하면 사후에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에 추존되었고,

생전에 동몽교관을 했으며, 호는 정좌와, 본관은 청송, 이름은 심조"입니다.

심조의 묘

 

 

 


심척의 묘비에는 "충신 증 통증대부 이조참의 행 정랑 흡곡 청송 심공 척 지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충신으로 사후 통증대부 이조참의에 추존되었고,

생전에 정랑으로 재직했으며, 호는 흡곡, 본관은 청송, 이름은 심척입니다.

 

심척의 묘

 

 

 묘지 안에서 바깥으로 본 모습

 

 

 


이 묘비는 2005년 청송심씨 종중에서 건립했다고 합니다.

김포시에서는 향토유적(제8호)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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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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