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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봉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화진포전경

 

 

 화진포해수욕장 앞바다의 금구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소재 화진포는 연안에 형성된 석호 가운데 하나로

 경관이 아름다워 강원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동해안의 호수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호수의 둘레는 16에 달합니다.

석호는 바닷가에 모래언덕이 발달함에 따라 만이 바다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기는 호수이며,

화진포는 전형적인 석호 지형으로 호수와 바다 사이의 백사장이 화진포해수욕장압니다.

 

화진포는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여 많은 별장이 건설되었고 휴양지가 되었는데,

특히 광복 후에는 김일성(金日成)이 별장을 지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 부통령 등이 별장을 지었으며,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상태입니다.

 

 

 

 

 

 

 

넓은 백사장과 아름다운 송림으로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으며,

담수호에 사는 잉어 등의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도 즐겨 찾습니다.

또한 호수 주위에 피는 해당화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고성팔경 중 제3경에 이름을 올린 명소입니다.(자료/다음백과사전에서 발췌인용)

 

화진포 호수의 전체모습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은 호수 남동쪽의 응봉에 오르는 것입니다.

응봉은 해발고도가 122m에 불과하며

화진포소나무숲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기에 누구나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습니다.

 

 

 

 

 

 

 

응봉에 서면 왜 이곳이 고성팔경중 3경으로 지정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폭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화진포호와 화진포 해수욕장이 한 눈에 바라다보이며

특히 날씨가 청명해서인지 북녘땅 금강산의 암봉이 아스라이 빛나고 있는 모습니다.

 

 

 줌으로 당겨본 북쪽 금강산 능선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은 과거 해방 후 38도선이 생기면서

이 지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치하로 들어갔기 때문에

한때 김일성 일가가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 휴양지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립니다.

 

이 건물은 당초 1938년 독일인 베버의 설계 및 시공하에 완공된 곳으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고성군 남부 지역이 대한민국의 관할로 편입되면서

1964년 육군본부에서 철거하여 재건축 후 군인휴양지로 이용되어 왔다가

1995년 보수하여 복원했습니다. 현재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화진포 앞바다에는 거북이 형상의 작은 섬인 금구도(거북섬)가 있는데요.

금구도는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거북이와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이곳에서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의 왕릉관련 자료가 발견되었답니다.

 

광개토대왕은 생전에 이곳에 왕릉을 축조하였고 사후 20대 장수왕은

이곳에 선왕의 시신을 안장했다는 것입니다.

화진포 해변에는 이를 알리는 조형물과 안내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습니다.

 

 

금구도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해수욕장은 KBS TV 인기드라마

가을동화(2000)의 촬영지여서 많은 연인들이 찾았다고 하는군요.

 

화진포해수욕장

 

 

 

 

 

 

화진포 콘도 맞은편의 화진포교를 건너면 이승만 별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별장은 1954년 신축해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복원해 2007년부터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한 것입니다.

 화진포교

 

 

 이승만 별장 앞 도로

 

 

 

 

 

 

 

 

 

 

 

화진포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바로 아래 호숫가에는

화진포 설화를 상징하는 여인상이 세워져 있는데요.

화진포라는 이름이 유래한 설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먼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본 스님은 딱 멈춰 서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쫓아오시오?"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로 변했다.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가 그만 돌이 되어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필자는 해파랑길 49코스를 답사하면서 화진포를 만났습니다.

화진포는 정말 멋진 명소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화진포 둘레길을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2020.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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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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