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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 소재 오일도 생가는

서정시인이자 항일시인인 오일도 선생(1901-1946)이 나고 자란 곳입니다.

오일도의 본명은 오희병(吳熙秉)이며 일도(一島)는 아호입니다.

본관은 낙안(樂安)이라고 하네요.

 

오일도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릿쿄 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는데,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1931년 문단에 등장하여 《시문학》,

《문예월간》 등에 서정시를 발표하였습니다.

1934년 《시원》을 창간하여 문단에 예술지상주의의 꽃을 피게 하였으며,

<눈이여, 어서 내려 다오>, <노변의 애가> 등

주로 슬픈 서정시를 발표하였습니다.(자료/다음백과)

 

작은 연못 옆에 서정시인 오일도의 고향 감천마을을 알리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감천마을은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불리는 이름으로

낙안오씨들이 400여년을 살아온 집성촌입니다.

 

 

 

 

 

연못 너머로 기와집이 보여 가보니 바로 낙안오씨 종택인 감호헌입니다.

작은 연못을 끼고 있어 주변 경치가 매우 좋군요.

 

 

 

 

 

 

 

 

 

 

 

 

연못의 정자가 있는 뒤쪽으로 가면 오일도 시문학공원입니다.

이곳에는 오일도의 좌상과 시 몇 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일도 시인의 생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감천2리 마을회관 뒤쪽에 위치한 생가를 찾았습니다.

생가로 이어지는 골목의 기와담장이 매우 친근하더군요.

이 생가는 시인의 조부가 조선 고종1년(1864)에 건립한 것으로

정면5칸 측면6칸 규모의 ㅁ자형가옥으로 솟을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가입구 골목 

 

 

 

 대로쪽에서 바라본 오일도 생가

 

 

 

 

대문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에는 소형 트럭이 세워져 있고 온실이 있어

사진찍기는 대소 불편하지만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기에

이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랑채에는 국운헌(菊雲軒)이라는 현판과 한묵청록(翰墨淸綠)이라는 액자가

위아래로 걸려 있는데요. 국운헌은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시인의 선조 오수눌의 호 “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쓴 글씨라고 합니다.

 

한묵청록은 바른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하는군요.(참고자료/영남일보 2020.11. 30)

 

 

 

 

 

 

 

 

 

사랑채 좌측에는 중문채(안채 진입문)인데요.

입구에는 봄을 맞이하는 입춘대길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안채에는 살짝 들어가 그냥 사진 한 장만 찍고 나옵니다.

 중문채

 

 

 안채의 모습

 

 

 

 

참고로 오일도 시인의 대표작인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를 옮기며 답사를 마무리합니다.

(2021. 3. 6)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어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盃)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칼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의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 퍽 내려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 위에

내 영(靈)을 쉬이려는 희원(希願)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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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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